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폭발호(暴发户),중국어로 ‘빠오파후’, 벼락부자다. 화산이 폭발하듯이 짧은 기간이나 단번에 부(富)를 축적한 부자를 가리킨다.
개혁개방이후 ‘빛의 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룬 중국은 벼락부자들이 넘쳐난다. 돈을 향해, 아니 부자가 되기 위해 14억 중국인은 오늘도 힘차게 달리고 있다. 하룻밤 자고나면 부자순위가 뒤바뀌긴다.
개혁개방은 중국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만들었고, 수많은 벼락부자들을 탄생시켰다. 국유기업을 불하받은 중국공산당 간부들은 자본가그룹을 형성, 경제성장의 단물을 빨아들였고 관치금융을 통해 막대한 자금지원을 받아 빠른 속도로 기업을 성장시켰다. 폭등한 부동산가격은 개발정보와 개발이익을 선점한 부동산재벌들을 양산시키기도 했다. 자산 20억 위안(한화 약 3,400억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폭발호(슈퍼리치)만 2만여 명에 이른다.(후룬바이푸통계)

부자들은 중국공산당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노동자와 농민 등 프롤레타리아의 ‘무산계급’ 정당이라던 중국 공산당은 당규를 바꿔 부자들을 대거 당원으로 가입시켰다. 자본가들이 공산당원의 20%를 넘어선지 오래다.

2019년 중국 최고의 빠오파후(후룬)는 알리바바그룹의 마윈(马云) 전 회장이다. 지난 9월 경영일선 은퇴선언을 했지만 여전히 그는 2년 연속 중국 최고 부자지위를 지켰다. 2위는 위챗, QQ의 텐센트그룹 마화텅(马化藤) 회장이 차지했다. ‘신차이푸’(新財富)라는 경제잡지가 발표한 부자순위에서는 마화텅 회장이 오히려 1위에 올랐다. 오늘 마윈과 마화텅, 헝다(恒大)그룹 쉬자인(许家印) 회장이 엎치락 뒤치락하면서 최고부자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내일은 누가 중국 최고부자로 등극할지 아무로 모른다. 마윈은 당장 내년 부자순위에서 밀려날 것이다.

라오바이싱(老百姓)들이 본격적인 ‘폭발호’ 경쟁을 벌이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인 2004~2005년, 중국 최고의 부자인 ‘서우푸’(首富,최고부자)는 궈메이전기(国美电器)의 황광위(黄光裕)회장이었다. 중졸 학력의 황 회장은 가전양판점으로 성공신화를 창조했다. 당시 나이는 35세. 그러나 곧바로 그는 내부자거래와 뇌물공여혐의로 체포돼 2008년 재판을 받고 징역 14년을 선고받았다.

개혁개방 초기에는 ‘포브스’지가 세계의 부자순위를 발표하면서 중국부자순위를 따로 집계 발표했지만 2000년대 초반 ‘후룬(湖润)연구소’가 매년 중국부자 순위를 집계해서 발표하고 있다. 중국인들이 얼마나 부자순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 짐작할 수 있다. 신중국 건국의 아버지격인 마오쩌둥(毛泽东) 역시 지금은 신중국 건국에 기여한 공로보다는 오히려 ‘재물신’으로 라오바이싱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올해 중국 최고부자 마윈 일가의 자산은 무려 2,750억 위안(한화 약 46조7,500억 원)에 이른다. 2위 마화텅 회장은 2,600억 위안. 3위로 떨어진 부동산재벌 헝다(恒大)그룹 쉬자인(许家印) 회장도 2,100억 위안이나 된다. 이들은 모두 황광위가 잘 나갈 때 부자순위에 끼어들지 못했다. 메이디(美的)그룹의 허샹젠(何享健)일가, 여성인 양후이옌(扬惠妍), 황정(黄峥), 딩레이(丁磊), ‘푸얼따이’(富二代, 재벌2세)논란을 일으키며 여러 물의를 빚은 아들 문제로 주춤한 완다(万达)그룹의 왕젠린(王健林) 등도 10위안에 머물렀다.

중국부자들은 2000년대 초반까지는 제조업이나 유통에 뛰어든 자수성가형이 많았다. 점차 넷이즈의 창업자인 딩레이를 비롯한 IT업계에서도 유니콘 기업이 줄줄이 탄생하기 시작했고 샤오미(小米)의 레이쥔(雷军) 회장도 20위권에 이름을 올렸고 맨손창업 7년만에 틱톡(今日头条)의 장이밍(张一鸣)회장이 처음으로 770억 위안으로(신차이푸) 순위권에 진입했다. 알리바바의 '타오바오‘(陶宝)와 더불어 중국내수쇼핑몰을 반분하고 있는 ‘징둥’(京东)닷컴의 류창둥(刘强东)회장도 빠르게 상위권으로 진입했다.

하루에도 수많은 벼락부자, 폭발호가 태어나는 곳이 중국이다. 수많은 부자들이 하루아침에, 쪽박을 차는 곳도 중국이다. 순전히 자신만의 노력과 운으로 중국 최고의 부자가 될 수는 없다. 중국사회를 움직이는 핵심체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지 않고 부자가 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신중국의 새로운 황제를 굼꾸었지만 실패한 보시라이(薄熙来) 전 충칭시 서기를 후원하던 다롄(大连)의 스더(實德)그룹 쉬밍(徐明)회장은 보 전 서기의 낙마와 더불어 경제사범으로 함께 기소돼 옥중에서 사망했다. 50대의 마윈이 갑작스럽게 물러나게 된 것도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중국에서는 누구나 벼락부자가 되기를 꿈꾼다. 누구나 벼락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며 그 자리를 지키기는 더욱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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