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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의 문화유산답사기]<7> 담양 금성산성김상조 문화관광해설사
   
   
   
금성산성은 장성의 입암산성, 무주의 적상산성과 함께 호남 3대 산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삼한시대 또는 삼국시대 처음 쌓았다고 전해진다. 조선 태종 9년(1409년)에 고쳐 쌓은 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이어지면서 1597년(선조 30년), 1610년(광해군2년) 잇따라 증, 개축이 이뤄졌다. 이 때 내성을 새로 쌓고 관아 등을 이 안에 두었다. 1653년(효종 4년)에 성곽 위 여장을 수리했다. 그 해 비로소 성의 면모를 뚜렷하게 갖추게 된 것이다.

금성산성은 암벽과 계곡 등 지형적 여건을 살려 쌓은 포곡식 산성이자 전부 돌로 쌓은 석성이다. 일반 산성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내성과 외성을 두룬 함께 갖춘 복곽식 성곽이란 것이다. 외성은 2km, 내성은 700m에 이른다. 내·외성 모두 성문과 옹성, 망루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 지금도 성벽을 따라 걷다보면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사찰과 민가, 우물은 물론 관아와 군사시설이 두루 갖춰진 것이다. 전략적 위치에서 군사적 방어역할을 한 산성과 함께 백성을 다스리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중심 읍치로서도 기능을 한 것으로 보인다.

금성산성은 관련 문헌기록을 보면 근세로 접어드는 1875년(고종 12년)까지 제 역할과 기능을 충분히 수행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894년 동학농민전쟁 때 일본군에 의한 방화로 수난의 역사를 겪게 된다. 녹두장군 전봉준은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 뒤 후퇴를 거듭했다. 이어 전열을 다듬기 위해 천혜의 요새로 알려진 금성산성에 은거했다. 마지막 배수진을 친 셈이다. 그러다 그 해 겨울 농민군 진영의 식량이 완전히 떨어졌다. 전봉준은 부하들과 인근 순창으로 식량을 구하러 나갔다. 그런데 옛 친구이자 부하였던 김경천의 밀고로 관군에게 붙잡히는 몸이 됐다. 마침내 본진 주둔지 금성산성을 노리던 일본군은 금성산성에 진주했다. 이 때 4개 성문 등 건물을 모두 일본군에 의해 불태워졌다. 당시 만행으로 웅장함을 자랑하던 동·서·남·북문 모두 터만 남게 됐다.

이 산성은 한말 대일 의병항전에서도 참혹한 비운을 목격하게 된다. 1896년 을미의병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기삼연 의병장이 1908년 정미년 의병 300여 명을 모아 일본군과 싸우다 그 해 겨울을 나기 위해 금성산성에 은거했다. 그러나 호시탐탐 공격을 노리던 일본군에 의해 급습을 당했다. 이때 의병 30여 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게 된다. 금성산성이 동학농민군과 의병들의 원혼이 잠든 역사적 격전지라는 사실이 확인된다. 담양군은 금성산성이 삼국시대 이래 근세까지 역사적 유적지로 각광을 받자 마침내 1994년 복원사업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활발하게 펼쳐진 복원사업으로 현재 외성 남문격인 보국문과 내성 남문격인 충용문이 산뜻하게 제 모습을 되찾았다. 이어 내성과 외성 성벽 일부도 옹성과 치성을 갖춘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금성산성은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과 용면에 걸쳐 있다. 1991년 사적 제353호로 지정됐다. 둘레 7.3km 이 성안에는 해마다 곡식 2만3천석을 보관할 정도였다고 한다. 규모가 짐작되고도 남는다. 높이 605m 금성산 정상이 성곽의 가장 높은 위치다. 둘레를 다 돌면 4시간 30분이 걸린다. 찾아가는 길은 의외로 쉽다. 대구-광주간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 순창IC를 벗어나 순창고추장단지앞을 지나 담양-순창간 국도로 10여 분간 달리면 오른쪽 금성산성 팻말이 보인다. 지방도로를 타고 달리다보면 연동사, 널찍한 잔디밭 오토캠핑장, 이어 금방 산성입구에 닿는다. 이곳에서 30여 분간 대나무와 솔숲 길을 걸어 올라가면 외성 남문격인 보국문에 닿는다. 순찬 강천산내 강천사에서도 올라가는 숲길이 있다. 1시간 30분 가량 걸으면 운대봉과 동문지 일대에 닿는다.

금성산성 외성은 보국문을 기점으로 좌우로 둘러쳐져 운대봉과 연대봉에서 정점을 맞는다. 내성의 남문이 충용문이고 외성의 남문이 보국문이다. 충용문을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내성안에 해당된다. 내성안에는 ‘동자암’이란 자그마한 암자와 약수터가 있다. 한동안 TV방송에 단골로 등장한 암자다. 약수터는 물이 산성의 필수적 요소임을 알려준다. 약수터 옆길을 따라 오르면 내성 암문이 나온다. 누각이 있었으리라 추정되지만 현재는 아무 것도 없다. 암문을 빠져나와 평탄한 오른쪽 산길을 따라가면 곧바로 외성 동문지다. 동문지는 산성 밖 동쪽 강천사에서 올라도 1시간 30분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금성산성 답사는 여기서 본격 시작된다. 동문지에서 서쪽 오르막을 바라보면 큰 바위봉우리가 보인다. 운대봉이다. 조금 가파르지만 거리가 짧아 비교적 오르기 쉽다. 운대봉을 지나 성벽 옆 얇은 돌계단을 딛고 연대봉위에 올라서면 북문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어 담양호와 추월산을 바라보고 내달으면 서문지다. 등산객들은 대개 북문지에서 내성 안으로 하산한다. 그러다 보면 보국사 터가 나온다. 보국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는 절터다. 그러나 구멍 두 개 뚫린 1m가량 당간지주 한 기가 절터였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줄 뿐 달리 특이한 유적은 없다. 절터에는 지금은 누군가가 지은 황토집이 한 채 있다. 보국사 터를 지나면 외성 성벽도 절반 이상 답사한 셈이 된다. 서문지에서 보국문에 이르는 성벽은 너무 가파르고 협소해 걷기에는 위험하다. 일단 북문지에서 내려다보면 외성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멋지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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