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직원들은 모두 퇴근한 밤늦은 시간에 사무실에 혼자 남아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신문기사에 허탈해진 마음을 달래고 있다. 최근 완성된 프로젝트에 관한 기사다. 지난 7월까지 내가 다른 부서에서 열정적으로 준비한 일이었다. 자리를 옮기면서 손을 놓았는데 이 때문에 다른 사람의 성과가 된 것이다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일이었다. 주위의 비협조로 진척이 늦어 답답했다. 그러나 관련 규정이나 환경을 검토하니 가능한 프로세스였다. 또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갑자기 자리를 옮긴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여유를 부렸다. 이런 식으로 끝날지 상상도 못했었다.

올해는 1개월도 안남았다. 내년에 대한 기대도 있지만 지난 해의 아쉬움도 많다. 돌아보니 이룬 것보다는 못 이룬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예측못한 변수를 감안하여 미리 준비했으면 할 수 있었던 일도 있었다.

아쉬움은 미련을 남긴다. 미련의 어원은 옛날 부모님의 상례기간 3년중 첫 1년을 의미한다고 한다. 첫해는 죽은 이에 대한 그리움이 가장 크다. 미완성의 아쉬움도 당해연도에 가장 클 것이다. 해를 넘기면 새로운 일을 하면서 희석된다. 그래서 연말이 되기 전에 성과를 내려고 한다. 그래서 보통 연단위로 일을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 회계연도 독립의 원칙도 있다. 해가 바뀌면 다른 사업이 되는 경우가 많다.

주위를 보면 올해 못한 일은 그냥 넘어간 것으로 포기하는 분위기다. 보통 연말에는 하던 일을 마무리하려고 하지 새로 시작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성과는 이미 대부분 결정된 것 같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연내에 성과를 낼 시간이 없다. 어느 정도 진행된 일은 막판 스퍼트라도 하지만 그렇지 못하니 포기를 하고 해가 바뀌기를 기다린다. 새로운 일은 해가 바뀌면 하려고 한다. 남은 기간은 올해의 결산과 내년 준비에 전념한다. 망년회를 하면서 지난 연도의 일은 잊어버리려 한다.

리셋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컴퓨터가 이상해지면 응급조치로 껐다가 다시 부팅하게 되면 새로 시작하는 것을 다른 일에 적용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 것을 제로(0)로 돌리고 새로 시작하려는 생각이다. 컴퓨터 게임에서는 가능하다. 해가 바뀌면 리셋이 되는 효과가 있다.

리셋이 된다면 새로 시작할 수 있기에 잘못되는 부담이 적다. 보통 과학실험은 리셋이 가능하다. 에디슨이 수많은 실패를 통해 많은 발명을 한 배경에는 리셋이 있다. 재료나 프로세스를 바꾸어 가며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내가 글을 쓸 때도 쓰다가 막히면 그만두고 주제를 바꾸어 다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리셋으로 완전히 없던 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매몰비용 때문이다. 지난 성과를 참고하지 않으면 실패를 반복할 뿐이다. 미국에서 예산을 편성할 때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는 제도(ZBB)가 있었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 또한 모든 일이 리셋되지도 않는다. 가능한 경우보다 불가능한 경우가 훨씬 많다.

2019년 연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연말의 실패를 막기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면 새로운 해부터 열심히 하겠다고 할 수도 있다. 한해를 리셋하고 새로 시작하고 싶은 생각인 것이다. 그러나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니 실제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지금보다 잘한다는 보장도 없다. 해가 바뀌어도 마찬가지다. 2020년도에 2019년의 실패를 밟지 말란 법이 없다.

인생 전체를 보면 새로운 삶이 있을 수 없으므로 리셋은 불가능하다. 새로운 일을 하더라도 그냥 현재하는 일의 포기일 뿐 리셋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인생후반기에 포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내경우도 나이를 먹으면서 포기한 일이 많다.

결국 지금 바뀌지 않았는데 해가 바뀌면 한다는 것은 어려울 듯 하다. 연초에 작심 3일이 많은 이유는 해가 바뀌어 마음을 다잡으면 다되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해가 바뀌면 하겠다는 일이 있으면 지금부터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올해 남은 시간을 그냥 보낼 것인가. 아직 몇주 더 남았는데.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남은 기간이라도 제대로 보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꼭 올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꼭 1년 단위로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년을 위해서도 지금 대충 보내면 안될 듯하다. 그래서 해가 바뀌기 전에 해 볼만 한 것이 없을까 찾아보고 있는데, 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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