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천동 포항 이발소

그들이 원한 삶의 방식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거센 파도처럼 밀려오는 세상의 물결을 넘지 못하고 이 자리에서 그대로 살아왔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낡은 소파에 앉아 아무 말이 없다.

평생을 한 순간인 듯 보리수나무 밑에 정좌하고 구도하는 구도자들의 표정이 저렇지 않았을까. 그들이 깨달은 것은 결국 자기가 선택한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야한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도로의 빠르게 굴러가는 차바퀴 소리를 두고, 조금 들어앉은 여천동 골목에 이발소 하나가 오래된 흰 타일 벽을 입고 서있다. 그곳에는 연세가 들었으나 아직도 흰 가운을 입었던 그 때처럼 형형한 눈빛을 가지신 이발사 한분이 계신다.

동네도, 골목도, 건물도 모두 낡았고, 허물어져 공터가 된 곳도 있으며, 동네 이름도 몇 번 바뀌었지만 그 곳에 그대로 있어준 것이 어쩐지 고맙고 가슴이 시린 여천동 골목이다.

내 살기에 급급해 발길이 뜸했던 고향을 이순 넘어 찾아가니 아직도 그곳에 기다리고 계신 늙은 부모님을 만난 마음 같다고 할까.

여천동에는 가난한 예술가들과, 먹이를 찾아 숨어들어온 길고양이들과 잊어버린 옛일을 더듬어 찾아드는 사람들의 발길이 모이는 곳이다. 그 동네처럼 오래된 노포들과 그 노포처럼 오래 골목을 지키고 살아온 이발사가 살아가는 곳이다.

어쩌다 손님이 찾아들면 이제는 녹슬고 이가 빠진 옛 가위나 면도칼 대신 최신의 면도기와 가위를 쓴다. 옛 도구들은 추억처럼 진열될 뿐이다.

푸른 하늘 중천의 낮달 같은 가위소리만 들리는 이발소, 거친 세상의 표정을 비추기도 했을 거울을 앞에 두고 정좌한 낡은 의자와 날이 닳은 가위 날은 이제 세상의 인심에는 무딘 듯 날카로운 푸른 눈빛 대신 둥근 마음을 먼저 내민다. 글/이을숙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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