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대 울주군청 도서관장

중국에서 혼자 2년 동안 생활한 적이 있다. 시간이 날 때면 이곳저곳을 배회했다. 중국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를 해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래서 어떤 날은 그들의 삶의 한 부분을 경험해 보아 스스로 기분이 좋아졌을 때도 있었다.

거리나 골목을 돌아보면 간판이나 안내판에 아주 명쾌하게, 누구나가 알기 쉽게 사자성어들이 있어 무슨 뜻인지를 알게 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이곳에다 차를 대지 마세요' 라고 쓸 것을 그들은 '금지정차(禁止停車)'라고 쓰면 그뿐이다. '우공이 산을 옮기다'도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고 쓴다. 한자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의 사자성어의 사랑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중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사자성어를 많이 사용했을까? 중국이 사자성어를 좋아했으면, 우리는 무엇을 좋아했을까? 유럽은 또 무엇을 즐겨 사용했을까? 이런 생각이 나의 머리에 떠나지 않았다. 생각 끝에 나는 내 나름대로 한 가지 생각에 도달했다.

중국은 사자성어를, 우리는 유구한 역사와 문화의 끈을 이어온 속담을 즐겨 사용했는데, 삶의 경험에서 나온 성찰(省察)이 그 밑바탕이 된 속담으로, 그 속에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모든 것들이 녹여 있다. 유럽은 삶의 관찰에서 나온 우화(寓話)가 대신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속담 사전에서 맨 앞에 나오는 '가까운 남이 먼 일가보다 낫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처음 만들어 졌을 때도 정확하게 맞았지만 오늘날에도 꼭 맞는 속담이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들 주위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그 나라의 국민성과도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며, 자자손손 전해지는 교훈으로 남아 오늘에 이른 것이리라 보여 진다.

사자성어와 속담, 우화가 있어서 우리는 누구나가 올바른 삶을 사는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게 된다. 어느 날 삶에서 나쁜 길이 생각이 나면 사자성어도 좋고, 속담도 좋으며, 우화를 천천히 음미(吟味)해 보라. 나는 일 년에 한 번은 그렇게 하고 살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바른 삶을 사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매번 사자성어를 볼 때마다 답답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그것은 바로 조삼모사(朝三暮四)이다. 조삼모사의 주인공은 원숭이인데, 우리는 원숭이들을 어리석은 집단으로 표현할 때 사용하지만, 정작 원숭이들은 그런 인간이 어리석다고 저들끼리 수근수근 거리지만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조삼모사의 이야기를 들어다 보자.

옛날 중국 송(宋)나라에 저공(狙公)이라는 이가 있었다. 저공은 어려운 살림에서도 가족들의 양식을 줄여가면서도 원숭이들과 함께 살아서 서로 간에 마음이 통할 정도였다. 그러나 살림은 늘지 않았지만 원숭이 수는 점점 많아져 먹이를 충당하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하루는 원숭이들이 화를 내지 않도록 슬쩍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의 식구가 매년 늘어서 도토리가 감당이 안 되어 이제는 아침에는 세 개, 저녁에는 네 개를 주려고 하는데 너희들은 어떠니?"
그러자 원숭이들은 아침에 도토리 세 개로는 배가 고프다며 화를 크게 냈다. 이에 저공은 다시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면 어떻겠니?"
하자 원숭이들은 모두가 절을 하고 기뻐하며 좋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열자'의 황제편에 나오는데 흔히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을 우롱할 때 비유하는 것으로, 저공이 어리석은 원숭이를 농락하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국어사전에는 '간사한 꾀로 남을 속이고 농락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여기서 저공의 원숭이들 과연 어리석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람의 관점에서 보지 말고 원숭이 관점에서 한 번 살펴보자.

처음 저공이 제안한 조삼모사와 원숭이들이 요구한 조사모삼(朝四暮三)의 합은 7개로 같으나, 실은 그 속에 아주 큰 차이점이 있는데 바로 시간이다. 원숭이들은 영리하게도 그 시간을 알았다는 것이다. 시간이 왜 중요할까? 크게 보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아침은 지금이고 저녁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다. 아침에 눈만 뜨면 3개가 아니라 4개를 받기에 합이 같은 도토리를 받으려면 이왕이면 먼저 많이 받는 게 낫다. 3개 보다 4개를 가지고 있으면 최소한 1, 2개를 이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이에게 선물도 할 수 있고, 빌려도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재산에 관심이 많은 원숭이는 자신이 필요한 것을 위해 팔기도 하고 물물교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원숭이들도 하루 24시간 중 움직이는 시간이 있고, 잠자는 시간도 있다. 먹을 음식이 많이 필요한 시간은 잠을 자는 밤보다는 활발하게 움직이는 낮에 더 많은 도토리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밤에는 다이어트를 하는 원숭이들은 한 개도 먹지 않고 잠만 자는 원숭이도 있을 것이다. 내일 아침에는 7개의 도토리를 가지고 있는 꿈을 꾸면서 말이다. 이는 현찰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좋은 지 아니면 나중에 받는 것이 좋은 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는 것이다.

저공은 자신의 제안을 원숭이들이 거절 할 줄을 알았다. 그래서 조사모삼을 미리 준비하여 협상(協商)을 순조롭게 끝냈다. 결과적으로 양쪽을 다 만족시키는 협상이 되었다. 나라 안팎에서 순조로운 협상을 잘 하는 인재들이 많이 필요하지만 불행하게도 잘 보이지 않는다.

조삼모사의 올바른 뜻을 알고, 그 사자성어에서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협상의 테이블에 앉으면 누구나가 숨기고 있는 자신의 카드를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부자(父子)간에도 협상을 하는 시대이다. 협상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살아가는 시대에,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의 도토리를 요구한 원숭이들을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말고 똑똑한 원숭이로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저공과 원숭이의 조삼모사의 사자성어에서 우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임을 깨우쳐 준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지금이 가장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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