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문화관광해설사

대구-광주간 고속도로 거창 톨게이트를 빠져나오면 서남쪽 함양 가는 국도와 함께 구비치는 위천강과 함께 거창의 진산인 건흥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거열산성은 거창읍과 마리면 경계인 취우령 남쪽 해발 573m 건흥산의 정상부를 빙둘러 축조한 테뫼식 산성이다. 이 때문에 건흥산성 또는 만흥사 산성이라고도 불린다.
거열산성에 올라가려면 위천강가 정자 ‘건계정’ 못미쳐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건계교 다리를 건너 정상을 향해 산길로 30여 분간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이 구간은 지그재그로 경사가 가팔라 조금 힘겹게 느껴진다. 상당수 관광객들은 먼 거리지만 거창읍 상림리나 마리면 영승리에서 능선을 따라 오르기도 한다. 완만한 산길이어서 힘들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성터 바로 아래에는 제법 널찍한 공간이 나오고 약수터와 운동시설이 있다. 약수는 수원이 성내에 있는 맑고 시원한 물이다. 거열성에 풍부한 수원이 있고 천혜의 요새임을 알려준다. 약수를 마시고 한숨을 돌려 왼쪽 듬성듬성 나있는 소나무 사이로 100여 m만 걸어올라 가면 성벽이 시작된다.

성벽은 길게 남쪽으로 이어지다가 직각으로 꺾여 서쪽으로 이어진다. 산성 규모는 둘레 약 1천115m, 높이 8m, 하부 폭 7m, 상부 4m로 알려져 있다. 성벽안 면적 또한 6만8천745㎡로 제법 큰 규모다. 성벽위에 올라서면 동쪽 거창읍 시가지, 남쪽 함양(마리면) 가는 국도와 구비치는 위천강이 바로 펼쳐진다. 성벽은 비록 복원중이지만 원형은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석성은 주로 외벽만을 돌로 쌓은 편축식과 내·외벽 모두 돌로 쌓은 협축식으로 구분된다. 거열성은 복원된 잔존구간이 대부분 편축쌓기다. 그러나 성돌쌓기는 품(品字)형 쌓기, 퇴물림 쌓기, 일열 수평 줄눈 쌓기 등 다양한 축조기법이 동원됐다. 거창과 함양 일대에는 거열산성뿐만 아니라 수많은 석성이 남아 있다.

경남 거창은 대구-광주간 고속도로가 지나고 합천과 무주, 김천, 함양과 사통팔달 교통이 원활하다. 경남의 최 서,북단에서 주위에 깎아지른 높은 산이 많지만 전북, 경북과 접경하는 표고 200m이상 분지다. 거창은 신라이전 거타 또는 거열이라 칭하다가 서기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 거창군으로 칭하게 됐다. 대표적으로는 망덕산성, 운정산성, 월곡산성, 분산성, 마리성(말흘고성), 금귀산성 등이다.
대부분 거창분지를 둘러싸고 주변 교통로를 지키는 형태다. 삼국시대 거창의 군사적, 지정학적 중요성이 그만큼 컸다는 반증이다.

거창은 역사적으로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각축장이었다. 게다가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 유민들의 부흥 운동이 3년간 끈질기게 전개될 만큼 치열한 역사의 현장이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 본기 문무왕 상(上)편 ‘삼년 춘삼월 흠순천존령병공취백제거열성 참수칠백여급(三年春三月欽純天存領兵攻取百濟居列城斬首七百餘級)’은 당시 상황을 잘 알려주는 기사다. 신라 김흠순(金欽純)과 천존(天存)이 백제땅 거열성을 함락하고는 백제부흥군 700여 명을 목 베었다는 기록이다. 이는 거열성이 백제부흥군의 최후 항전지임을 확인해준다.

백제부흥군은 덕유산과 지리산 일대에 거열산성이외 수많은 성을 쌓았다. 남원에 거물성, 구례에 사평성 장수에 덕안성 등이 대표적이다. 그 가운데 신라와 접경이었기 때문에 신라군의 마지막 공세로 맨 처음 함락되면서 나머지 성들도 잇달아 함락된 것으로 보인다. 거열산성은 673년 거열주 대감 아진함(阿珍含)이 당군을 맞아 싸우다 아들과 함께 전사한 현장으로도 전해진다. 삼국통일을 완수했지만 당을 물리치기 위한 요새로 중요성이 더해졌던 것이다.

거열산성이 삼국통일과 국난극복의 현장으로 역사연구에 중요유적으로 인식되면서 2008년 발굴조사, 2015년 학술 시굴조사가 진행됐다. 발굴조사 결과 삼국항쟁기인 7세기경 신라 유물이 상당수 출토됐다. 제사터, 성문터, 집수정, 망루 등도 확인됐다. 통일신라 이후에도 장기간 군사시설로 존속해왔을 것이란 추측이 역사적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거열산성은 조선조 중종때 편찬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재읍팔리 석축삼리(在邑八里石築三里)’라 기록돼 있다. ‘신동국여지승람’에도 673년(신라 문무왕 13) ‘거열주 만흥사(居列州萬興寺)’의 산에 성을 쌓았다는 기록도 있다.

경남도는 1983년 11월 17일 거열산성을 경상남도 기념물 제22호로 지정했다. 거창군은 거열성과 함께 건흥산 일대를 군립공원으로 지정, 지금까지 복원중이다. 거열산성은 1997년 남벽 1차, 2000년 남벽 2차, 2003년 서벽 등 연차적인 복원공사로 서, 남쪽 일부 구간은 제 모습을 되찾았다. 위천강변에는 데크가 놓이고 등산로가 개설됐으며 강 좌우로 주차장 등 편의시설도 들어섰다. 이 덕분에 인근 지리산과 덕유산, 가야산 등산객과 수승대와 월성계곡 등과 함께 거열산성에 오르는 발길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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