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태 시사평론가

페르시아와 로마의 격돌이 새 해 국제 정세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서양 역사에서 사산조 페르시아라는 시대가 있다. 오늘날 이란 지역을 중심으로 당시 세계 최강 로마를 위협하던 아랍 문명 최전성기다.

아르다시르 1세가 세운 고대 이란 왕조 사산조 페르시아는 서기 226년 서부 이란 지역에서 통치기반을 굳힌 뒤 동부 지역으로 영토를 넓혔다. 아르다시르 1세는 스스로 아케메네스 왕조의 정통 후계자로 자처하고 '이란족의 왕중 왕’으로 위세를 떨쳤다. 그의 아들 샤푸르 1세는 여러 차례 로마군과 싸워 로마 황제 고르디아누스 3세를 전사시키고 황제 발레리아누스를 포로로 잡을 정도였다. 효율적인 행정체제와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사산 왕조는 아시아와 지중해 연안, 북아프리카 일대에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오늘날 이란은 그 영광을 회복하기 위한 전략을 모색 중이다.

미국은 건국 이후 로마제국을 따라하려 하고 있다. 수도 워싱턴의 건물이나 국가 문장 등에서 제국 로마의 색채를 강하게 풍긴다. 황제 트럼프아누스는 미국 주도 신 세계질서를 외치며 오로지 재선을 위해 막대한 희생을 불사하고 있다. ‘이란조 페르시아와 로메리카(로마+아메리카)’의 한판 승부에 국제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앞날을 예측하기 위해 우리를 둘러싼 국제 질서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 양상, 브렉시트를 비롯한 유럽 사회의 현안, 러시아의 변함없는 남하정책,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의 경제 발전,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 불안 등을 어떤 시각으로 파악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 대 북한 정책도 동아시아 지역 국가와 미국을 포함한 세계정세 속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미국이 이란 군부 실세를 폭격한 직후 국제적인 이목은 김정은을 향했고 연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을 다시 제안했다. 여차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도 군사력을 사용할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과연 김정은 위원장이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할지.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에 가서 방한 모든 일정을 동행하겠다고 한다면 또 모를까. 그렇다고 해도 미국 정치를 배후에서 주무르는 석유 재벌이나 무기 제조상들이 방한 일행을 드론으로 공격하는 일쯤에 눈이나 깜빡할까.

국제 사회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정치현상을 국제 정치라 한다. 이를 바라보는 몇 가지 관점으로 자유주의, 현실주의, 구성주의, 급진주의 등이 있다.

자유주의(自由主義)는 인간이 선하고 협력적이라는 정치적 이상론을 펼치면서 자본의 흐름과 효율적인 제도들을 통해 국가간 전쟁을 회피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E. H. 카아는 이상주의를 국제적인 법적 권리와 의무, 국가 이익간 자연적 조화,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강조하는 유토피아니즘으로 파악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등장한 현실주의(現實主義)는 인간 본성을 사악한 것으로 간주하고 국가의 대외적 안전은 오직 국력의 획득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도자는 언제나 국가 생존과 권력의 획득 및 유지에 관심을 가지고 그 자신을 위한 군대를 확보해야 한다(마키아벨리). 권력이야 말로 인간 행태의 중요한 요소이며 강력한 주권자가 없는 한 혼란과 폭력이 되풀이 된다(홉스). 원죄로 더럽혀진 인간은 죄악을 저지를 수밖에 없고, 실제적인 자신보다 그 이상이 되려고 함으로써 악하게 된다(라인홀드 니버). 미국이 중동 이슬람 국가들을 다루는 입장이 군사력에 기반 한 현실주의적 태도이다.

구성주의(構成主義)는 국가 정체성과 국익의 중요한 요소들이 인간의 본성이나 국내 정치에 의해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에 의해 구성되는 관념, 규범, 가치로 결정된다고 본다. 관념적 구조는 행위자들을 통제하는 효과뿐만 아니라 구성적인 효과 또한 갖고 있다. 관념적 구조와 행위자들은 서로를 구성하고 결정한다. 반일 감정, 친미 성향, 중국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등이 국제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지표라는 관점이다.

급진주의(急進主義)는 마르크스주의 또는 구조주의라 부르기도 한다. 구조적인 착취 수단이 국제 정치를 움직이고 있다는 관점이다. 하나의 계급이 다른 계급을 지배하는 현실, 세계 경제 중심부인 북반구 부유한 국가들이 가난한 남반구 국가들을 착취하는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외교는 국권을 확립하고 영토를 수호하며 국민들의 안전과 품격을 유지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국가 최고 지도자의 경륜을 바탕으로 입법, 사법부의 협력 위에서 한 나라의 외교 정책이 수립, 실행된다. 우리나라와 같이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작은 국력을 기반으로 대외관계를 펼치는 일이란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중동 정세는 석유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파병 요구 또한 무시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우방을 지키기 위해 치뤄야 할 비용을 면밀히 따져서 물적 인적 희생을 최소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피해야 할 것은 새로운 적을 만드는 일이다. 성조기를 손에 들고 불필요하게 이슬람과 알라 신을 자극하는 행동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아파 자살 특공대가 광화문 광장에 등장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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