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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읽는 세상] 기차길옆 신흥떡집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이 떡이었던 시절이 우리에게 있었다. 잔치상에도 제사상에서도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떡이었던 시절이었고, 각 절기마다 그 때 가장 많이 나는 재료로 떡을 만들어 먹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의 떡이 최초로 만들어진 시기는 삼국이 정립되기 전의 청동기 시대의 시루가 발견되었으니 그 무렵부터라고 추측한다. 그 후 고구려 고분에도 떡을 찌는 시루 그림이 있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떡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 떡이 우리 음식문화에 큰 비중을 차지하였으리라 짐작한다.

그러나 지금은 서양의 빵과 과자가 유입되고 유교적 사회에 뿌리를 둔 관혼상제나 의례용 행사나 절기를 지키는 풍습이 없어지거나 축소되어 떡은 우리생활에서 새로운 형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핵가족이거나 1인 가구 시대에 맞게 건강과 간편함, 색상, 모양을 중요시한 새로운 떡 문화가 만들어지고 푸짐하게 쌀 한 가마니, 몇 말, 몇 되씩을 하던 예전의 떡 방앗간은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신흥동 옛 기찻길 옆 신흥 떡집의 주인 부부는 정미소를 사서 정미소는 하지 않고 1970년대 말부터 국수도 만들며 떡집을 시작하였다. 그 후 국수공장은 그만두고 떡집은 1년 전까지 하였으니 40여년을 한 셈이다. 떡집이 잘될 때는 명절마다 손이 모자라 동네 사람들의 품을 사서 밤새며 일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가마솥을 걸어놓고 장작불로 떡을 찌니 손이 많이 가고 힘이 들었지만 가스불로 찐 떡보다 맛이 있다고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거들어 주던 아들도 회사에 나가고 일을 많이 한 바깥주인은 병원에 들어가고, 안주인만 홀로 남았다. 떡을 찌던 솥도 고장이 나서 1년 전부터 간간이 들어오는 고추나 마늘이나 미숫가루 등을 빻아주며 떡은 이제 손을 놓았다한다.

약밥과 찰떡과 가래떡을 잘 만들어 돈이 귀하던 옛날에 하루 40-50만원은 벌었던 여든의 안주인은 없어진 철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쉬었다 가도록 떡집 앞에 의자를 내어두고 가끔 커피를 권하며 하루를 소일한다.
떡집 일을 거들어주던 이웃들을 위해 탁자 밑에 따뜻한 숯불을 피워두고 모여앉아 옛일을 얘기하는 여든 살 안주인의 손이 아직도 옛 인절미의 색처럼 뽀오얀 것은 한평생 안주인의 마음속에 담아온 인절미를 닮은 쫄깃한 인정 때문이리라.

탁자 밑 숯불이 타들어가듯이 신흥떡집의 마지막 불씨가 스러져가고 있지만 온 동네 사람들이 잔치 떡도 제사떡도 나누어 먹던 아름다운 인정은 늘 그대로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글/이을숙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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