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문화관광해설사

전남 광양은 ‘산성의 도시’ 답게 타 지역에 비해 백제시대 산성이 많다.
마로산성을 비롯 진상면 불암산성, 옥룡면 중흥산성, 진월면 봉암산성 등이 손꼽힌다. 게다가 인근 순천에도 검단산성 등 백제시대 성이 적지 않다. 백제 도읍이 웅진이었던 시대 남해안까지 진출하면서 국력을 과시했던 것이다.

그 가운데 마로산성은 광양의 백제 때 지명인 마로현의 치소로 대표적인 백제 산성이다. 위치는 남해고속도로 광양IC를 빠져나와 서쪽으로 광양읍 3㎞ 못 미쳐 우회하면 용강리(와룡마을)뒤 마로산 정상부에 있다. 마로산은 광양읍 사곡리와 용강리, 죽림리 등 3개리 경계지점인 해발 208m 야산이다. 자동차로 가려면 용강리 옆 소로를 따라가다 끝 지점에서 갑자기 왼편으로 왕복 1차선 산복도로를 이용하면 손쉽다. 도로를 따라가면 주차장이 나온다. 이곳에 주차하고서 이정표를 따라가면 곧바로 동문이다.

산성은 정상부 남, 북이 높고 가운데가 평탄하며 서쪽이 움푹 꺼진 형상이다. 양쪽이 높고 가운데가 펑퍼짐하게 낮아 마치 ‘말안장’처럼 생겼다. 마로산 이름도 모양이 여기서 연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종 4년(1867년) 신관호가 쓴 민보집설(民堡輯設)에 따르면 말안장 모양의 산정은 산성 축조에 매우 유리한 지형으로 알려져 있다. 마로산성 또한 산정과 능선을 따라가며 성벽을 쌓았다. 이 때문에 동쪽과 북쪽 성벽이 높게 보이고 서쪽은 저 아래 낮게 보인다. 산성은 구조상 정상부를 빙 둘러가며 넓게 차지한 테뫼식 석성으로 분류된다. 성벽 쌓기는 자연석에 가까운 할석으로 내외벽을 쌓은 협축식 공법이 사용됐다. 성돌 마다 평평한 면을 수평으로 맞춰 쌓아 올렸다. 어긋난 성돌과 성돌 사이에는 잔돌을 끼워 균형을 맞추었다. 석재는 장방형, 부정형 자연 할석과 판석 등 다양하다. 확인된 성벽의 길이는 550m이고, 면적은 18,945㎡에 이른다.

순천대 발굴결과 산성 안에서는 망루와 건물지 7동, 수혈유구 4기, 문지 1곳, 치 2개소 등의 많은 유구가 확인됐다. 또 기와류, 토기류, 철기류, 청동기류 등 백제와 통일신라시대 유물이 다량 출토됐다. 백제시대 쌓았지만 통일신라시대까지 사용됐던 것이다. 명문기와에는 마로(馬老), 관(官), 군역관(軍易官), 갑(甲), 관년말(官年末), 연천(年天) 등등 다수 명문이 확인됐다. 모두가 백제와 통일신라시대에 걸쳐 현 광양읍 치소였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와의 문양 또한 연화문, 변형화문, 원문, 당초문 등 국내 최초 문양이 많았다. 토기는 줄무늬병, 덧무늬병, 고배, 개배, 호, 방추차, 기타 토기편 등이다. 철기는 물미, 도끼, 낫, 칼, 화살촉, 화로, 못 등이 발굴됐다. 일반 유적지에서 보기 힘든 목재 유물로는 바가지, 흙손, 참빗 등이 확인됐다. 원형과 방형으로 모양이 다른 구리거울도 3점이 출토됐다. 지름 18.5㎝ 원형 거울에는 표면에‘왕가조경(王家造鏡)’ 명문이 양각돼 왕족 또는 귀족세력의 주둔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름 9㎝ 방형은 가운데 개구리, 사방에 올챙이가 새겨져 지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또 철제마, 청동마 등과 함께 진흙으로 만든 토제마가 285개 발견됐다. 이는 산성 안 제사터 흔적과 함께 나말 여초 산성에서 제사를 올릴 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됐다. 서쪽 하부 지점에서는 우물터와 집수정 유적 6개소가 발견됐다. 이로 미뤄 학계에서는 한때 상당수 병력이 주둔했던 중요 군사시설 또는 백성들의 대피시설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임진왜란 당시 조, 명 연합군과 의병이 주둔해 순천왜성과 사천왜성 주둔 왜군과 격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성문의 흔적은 동, 서, 남쪽 3곳에서 엿보인다. 성문은 백제시대에는 양쪽 벽에 나무기둥을 세워 그 위에 기와지붕을 얹어 통로 위에 별도 덮개가 없는 개거식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에는 사다리로 드나드는 현문식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마로산성 성문들은 시대별 변화 양식을 잘 보여주는 국내 보기 드문 사례가 되고 있다.

마로산성은 1998년 첫 지표조사가 이뤄졌다. 이듬해인 1999년 8월에는 전라남도기념물 제173호로 지정됐다. 그러나 2001년 9월 2003년 1월까지 두 차례 발굴조사에서는 마로산성의 문화재적 가치가 더 크다고 인정돼 마침내 2007년 12월 사적 제492호로 격상된다.

마로산성은 야산위 산성으로 지금은 누구나 가볍게 올라갈 수 있다. 산성으로 가는 길은 여러갈래 길이 나눠져 있다. 전 구간이 소나무 숲길이 그늘을 드리운다. 산성에 닿으면 동문과 서문 유적지에서 성벽과 성안으로 갈라지는 둘레 길을 만나게 된다. 어느 길을 택하든 산성 안팎을 모두 답사할 수 있다. 성벽에 올라보면 동, 남쪽으로는 광양만으로 통하는 주변 풍광이 멋들어지게 들어온다. 섬진강 휴게소를 지나 동남쪽에서 서북쪽 순천을 향해 달리는 남해고속도로도 발아래 보인다. 서쪽으로는 광양 읍 시가지와 신축된 아파트 단지가 한 눈에 조망 된다. 소나무 키를 훌쩍 넘는 북쪽 성벽위에서는 저 멀리 순천까지도 조망이 가능하다. 마로산성이 교통요지이자 중요한 군사적 방어시설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삼국시대 격전지였던 마로산성에는 선인들의 가쁜 숨결이 배어있다. 역사의 고비에 맞닥뜨릴 때마다 무거운 돌을 날라 산성을 쌓으며 항전을 감내했을 그분들의 고초를 생각하면 애잔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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