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중국에선 ‘단골’은 ‘호갱’이다.
상거래에서 단골에게는 가격을 할인해주고 ‘할인쿠폰’을 제공하는 등의 온갖 우대혜택을 주는 것이 기본인데 ‘상인’(商人)의 나라이자 경제대국 G2에서 단골을 호갱취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골은 중국에서 ‘창커’(常客)이라고 한다. 늘 오는 고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단골이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단골’관계가 짝사랑에 그치거나 종종 배신을 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여러 번 가서 자주 사는 가게인데도 특별히 싸게 우대혜택을 주지 않고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다른 가게보다 더 비싸게 가격을 부르는 경우도 있다. 이쯤 되면 ‘단골’이 아니라 ‘호갱’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종종 가던 베이징의 어느 가게에서 가격흥정을 하다가 절충이 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 채 가게 문을 나섰다. 며칠이 지난 후 그 때 눈여겨 뒀던 물건이 눈앞에 어른거려서 다시 그 가게를 찾았다. 가게 주인은 놀랍게도 자신이 제시한 지난 가격보다 더 비싼 가격을 불렀다. 그래서 그때보다 더 비싸게 부르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볼멘소리를 했더니 가게주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러서지 않았다. 기분이 나빠져서 다시는 그 가게를 찾고 싶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 상인이 왜 그렇게 나를 ‘호갱’대접한 것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나중에 중국친구에게 그 얘기를 들려주고 나쁜 사람이라고 했더니 웃으면서 ‘중국 상인’이 왜 그렇게 행동한 것인지 설명해줬다.
가게주인 입장에서 자신의 가게 물건이 좋아서 자주 온 것이니까 굳이 깎아주면서까지 팔 필요가 없는 손님이었다. ‘흥정을 하다가 결국 물건을 사지 않았지만 다시 그 물건을 사러 온 것은 그 물건을 꼭 사고 싶어서 온 것이므로 가격이 더 비싸도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 말이 맞았다. 그 때 그 물건이 마음에 들어, 다음에는 더 비싸게 부를 것 같아서 처음 흥정한 가격보다 조금 더 비싼 가격이었지만 ‘에이’하는 마음에 사고야 말았다. 나는 중국 상인의 상술에 당한 호갱이었다.

중국에서 단골고객은 창커(常客)라고 하는데 ‘늘 오는 고객’이라는 의미다.
사실 우리가 한국의 단골개념으로 중국에서 대우를 받거나, 대접을 하다가는 호갱되기 십상이다.

중국에서라고 왜 단골이 없겠는가.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어느 일방의 단골이나 일방의 호갱은 없다는 말이다.
가게주인 입장에서는 내가 자주 오는 고객은 맞지만 ‘창커’는 아니었던 셈이다. 신뢰할 정도로 깊은 관계를 맺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대접을 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종종 “오늘 (가격을)잘 해주면 다음에 크게 이익을 낼 수 있도록 손님을 소개해 줄께”라며 흥정을 하곤 한다. 중국에서는 이런 방식의 흥정이 잘 먹혀들지 않는다. 고객과의 사이에 깊은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미래의 이익을 기대하면서 가격을 깎아줄 중국 상인은 없다.
이같은 중국의 상거래관행을 이해하지 못하면 중국과의 비즈니스에서도 낭패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파트너와 한두 번 거래를 한 이후, 조건을 변경하거나 가격 변경을 요구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는 얘기다.
우리가 중국과 교류협력을 하는 과정에서 오해하는 여러 가지 중 하나가 '친구’(펑요우 朋友)관계다. 한 번 만나서 ‘펑요우’가 되고 다음 날 만나면 ‘라오펑요우’(老朋友)가 된 듯 한 착각에 빠진다. 하룻밤 술 한 잔 마시고는 ‘따거’라고 부르는 ‘형·동생’사이가 되기도 한다.
한두 번 만나서 깊은 신뢰를 쌓을 수도 있지만,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거래관계에서도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한중관계를 ‘朋友’에서 ‘老朋友’로 격상시키고, 진정한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두 번의 선심으로 중국의 마음을 살 수는 없다. 반드시 원칙을 지키면서 꾸준히 같은 자세로 대한다면 신뢰는 쌓이게 마련이다. 단골가게를 두고 있더라도 같은 물건을 파는 다른 가게를 통해 그 물건의 시세를 몰래 확인하는 그런 지혜도 필요하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중국의 ‘창커’인가 아닌가?’곰곰 생각해보면, ‘호갱’ 취급받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섣부른 의심과, 설익은 신뢰 모두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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