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우연히 채찍효과(bullwhip effect)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표현이 재미있어 검색해보니 물류분야의 전문용어인데 고객의 수요가 상부단계로 전달되며 단계별 수요의 변동성이 증가하는 현상이라고 한다. 소를 몰 때 긴 채찍을 사용하면 손잡이의 작은 움직임이 끝부분에는 큰 움직임이 되는 모양에서 붙여진 명칭이라고 한다.

물류 공급망에서 수요의 작은 변동이 제조업체에 전달될 때 정보가 왜곡되면 착시효과로 과다 또는 과소생산을 유발한다. 이 현상이 단계별로 중복되면 마지막 단계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혼란이 생긴다. 정보가 왜곡되고 확대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재고가 쌓이고 고객 서비스 수준도 저하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농산물이나 일부 공산품에서 과잉생산으로 가격폭락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채찍은 보통 황소나 말과 같은 동물을 몰거나 조련할 때 쓴다. 사람에게 휘두르면 처벌이나 폭력의 행사가 된다. 회유와 협박을 통한 조직관리를 당근과 채찍이라고 표현한다.
채찍은 무기도 된다고 한다. 검색을 해보니 긴 채찍을 강하게 휘두르면 끝부분은 음속에 가까운 속도를 내면서 소리를 낸다고 한다. 요즘 물리적인 채찍이든 처벌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든 함부로 휘둘렀다가는 큰일 날 것이다.

그런데 채찍현상을 다른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일의 진행이 단계적으로 연속하여 이루어지면서 나중 현상에 대한 예측이 앞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데 변화 폭이 커지는 경우다. 정보가 없거나 잘못된 정보를 맹신하는 과정도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변화하는 에너지가 집중되거나 외부의 힘이 가해져서 증폭되면 채찍현상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연간계획을 세울 때 결과를 정리하는 연말과 계획을 세우는 연초 사이의 괴리에 채찍 이론을 적용할 수 있다. 연말의 상황이나 능력에 대해 정확한 정보가 없으면 연초에 필요 이상의 과도한 준비를 한다. 그러면서도 불안하다. 과다한 준비가 헛수고가 되거나 용두사미 또는 작심삼일로 귀결되곤 한다.

채찍현상이 반대로 될 수도 있다. 적에게 채찍을 빼앗기면 보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즉 나중의 예측으로 처음의 행동을 과다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처음행동이 단계적으로 다음단계의 현상에 영향을 미치며 커지는 경우다. 이는 특히 나쁜 방향으로 진행될 때 효과가 크다. 기후에서 사소하고 미미한 요인이 엄청난 결과를 불러온다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도 이에 해당한다. 연간계획을 세울 때 연말에 대한 예측이 아니라 연초의 행동이 채찍효과처럼 연말까지 증폭한다. 실생활에서는 이 경우가 더 많다.
인류역사에서 보복적인 채찍효과는 많다. 환경을 함부로 훼손하다가 자연의 보복을 받는 것도 그 사례다. 요즘 출산율 저하로 일어나는 국가소멸의 위기는 70년대 산아제한 정책에 대한 보복적인 채찍효과가 아닐까. 미래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통해 현재 적절한 행동을 하여야 보복을 피할 수 있다.

채찍현상을 이용할 수도 있다. 좋은 뜻으로 채찍은 재촉하는 효과가 있다. 확실성을 담보하는 행위를 주마가편(走馬加鞭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다)으로 표현한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이 있는데 시작을 하게 되면 주마가편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행정학에는 가외성이란 용어가 있다. 신뢰성을 위해 중복적인 준비를 하는 것이다. 크로스 체크는 이런 가외성의 일종이다. 일상생활에서도 확인사살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리고 넓게 보면 이도 채찍효과의 일종이다.

사실 시작단계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준비들이 가끔 불필요한 낭비로 보일 가능성이 있다. 사전에 준비를 잘해서 예방을 하였는데 사고가 발생하지 않음으로 오히려 비난을 받는 억울한 상황도 있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 당시 이율곡의 10만양병설이 시행되었다면 임진왜란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율곡은 불필요한 준비에 국력을 낭비하였다는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사고의 발생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 이런 준비들을 좋게 볼 수 있을까. 연말의 작은 수요의 변화에 대한 과다한 행동으로 보는 채찍현상에 적용하지 않을까.

결국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모든 경우에 맞는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연초인 지금 하고 있는 여러 준비들이 어떤 단계에 해당할까. 연말에 준비를 잘하였다는 보람을 얻을 수 있을까. 아니면 불필요한 과장된 준비로 헛수고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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