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문화관광해설사

화산산성은 경북 영천시 신령면과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경계인 해발 828m 화산 정상부에 자리한 산성이다.

경북 영천시 신령면에서 의성군 탑리면 방향으로 28번 국도를 타고 달리다 보면 군위군 인각사 입구 못 미쳐 위로는 자동차 전용도로, 아래로는 옛 국도 교차로가 나온다. 이곳에서 화산산성 팻말을 따라 산길로 접어들면 세멘트 포장도로가 산속으로 이어진다. 이 길은 운전이 서툰 초보자들에겐 조금 위험하다. 산길은 해발 800m 군위군 고로면 화북4리 일명 화수마을까지 약 7km 가량 이어진다. 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화산은 목 긴 동물 기린을 닮은 형국이라고 전해진다. 제법 올라왔다 싶은 지점에서 눈길을 왼쪽으로 돌리면 저 멀리 비봉산과 금성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산자락에 드문드문 집들과 비닐하우스가 나타날 즈음 시야를 가로막던 나무들은 사라지고 갑자기 전망이 확 트인다. 그러나 화수마을 진입로다 싶은 지점에선 오른쪽 육군3사관학교 유격훈련장 팻말이 출입을 막는다. 다시 좌회전 마을로 접어들어 집들이 없는 지점에 이르면 세멘트 포장길도 끝을 맺는다. 작은 공터에 주차를 한 뒤 개울을 건너면 작은 사방댐이 보인다. 이곳에서 소나무 숲길 50여m를 잠시 걸어가면 짓다 만 홍예문이 좌우 무너진 성벽과 함께 보인다. 바로 화산산성 북문이다.

이 산성은 외침을 막기 위해 조선 숙종 35년(1709년) 병마절도사 윤숙이 병영을 짓기 위해 착공했다. 성벽 쌓기에는 백성은 물론 승려들까지 동원됐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동, 서, 남, 북 성문 기초와 성벽, 수구문을 쌓던 중 기근과 질병이 겹치면서 난관에 부딪쳤다. 결국 중지할 수밖에 없었던 윤숙 자신도 타지로 전출되면서 산성은 지금 모습처럼 방치되고 말았다. 현재 수구문이 자리한 남쪽 성벽도 육군3사관학교 유격훈련장으로 출입이 제한돼 있다. 다만 북문과 수구문 터는 축성을 시작했던 옛 모습 그대로 자취가 뚜렷하게 남아 있다. 남은 자취만으로도 당시로서 매우 튼튼하고 정밀하게 쌓은 기술력이 돋보인다. 북문 좌우에는 무너진 성벽과 성돌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

화산산성은 조선시대 축성 기법과 공사 순차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방문객이 가장 처음 맞닥뜨리는 북문 터 일대는 전체 성터 가운데 흔적이 가장 잘 남아 있다. 안팎 홍예문은 무사석과 부형 무사석으로 쌓았다. 무사석은 네모반듯하게 다듬어 성벽이나 담벼락에 높이 쌓아올린 성돌을 말한다. 부형 무사석은 둥근 홍예석위에 하부를 둥글게 깎아 얹은 성돌이다. 여러 개를 덧대 얹기 때문에 부형 무사석 가운데는 한 쪽 면 끝자락 일부만 곡면을 조각한 것도 있다. 이런 수법은 전통 석조가공과 성 쌓기 기술력이 당시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북문 터만 둘러봐도 다양한 석조가공 흔적이 엿보인다. 내외 겹 축 성벽은 토벽에 기대어 쌓은 내탁식 겸용 축성방식을 보인다. 수구문 터는 조선 중기 이후 유행한 2층 수구 축조방식을 잘 보여준다. 수구문은 비교적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그러나 수구문은 군사 시설 안에 자리해 관람이 금지돼 있다. 언젠가 출입이 해제되면 가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날을 기약하며 산성을 빠져나온다.

산성 북문을 다시 빠져나와 개울을 건너오면 개간촌이라 불리는 화산마을이 나온다. 외지에서 화전민이 들어와 정착하면서 일군 화전민촌이다. 주민들은 주로 무와 배추 등 고랭지 채소를 키워 내다팔며 생계를 이어왔다고 한다. 당시 개간한 채소밭은 산자락에 넓게 펼쳐져 있다. 마치 이국에 와 있는 듯 장관을 연출한다. 최근 이 마을에는 외지인들의 전원주택도 한 둘씩 생겨나고 있다. 화수마을의 형성 내력은 1962년도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불어 닥친 재건운동이 그 출발점이었다. 당시 자원한 농민들은 개인당 임야 6천여 평을 정부로부터 무상임대 받았다. 자신의 임야에 정착한 농민들은 밭을 일궈 배추와 무 등 고랭지 채소를 주로 심었다. 지금 산간오지에선 보기 드문 드넓은 옥토는 이때 개간됐다. 정착민은 그간 꽤 늘어났고 7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은 4개에 이르렀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산업화로 농사를 팽개치고 대거 도시로 빠져나간 농민들이 급증했다. 이 때문에 지금은 겨우 10여 채 농가 1개 마을만 남아 재건촌이란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화산산성과 화산마을은 인근에서 꽤 높은 고지대여서 보기 드문 풍광을 간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이 마을에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사화산 금성산과 가시산 등 가까이 보이는 풍광을 찾는 관광객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마을은 차량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 비좁은 길이 거미줄처럼 얽혀져 있다. 최근 이 마을에는 저 아래 군위댐 등지를 조망하며 사진 찍을 수 있는 전망대가 생겨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옆에는 요즘 유행하는 글램핑장이 조성돼 있다. 군위군에서 웰빙관광체험단지를 조성한다는 소문이고 보면 기대가 적지 않다.

화산마을을 내려와 28번국도 교차로에서 오른쪽 군위 쪽으로 꺾어 달리면 화수삼거리가 나온다. 이 곳에서 군위 댐 옆 고지대에 자리한 고로면사무소 쪽으로 달리다보면 ‘삼국유사의 산실’로 유명한 인각사가 금방 나온다. 인각사에는 일연 스님이 승탑인 보각국가정조지탑과 스님의 행적을 기록한 보각국사 탑비가 절 마당에 있다. 모두 다 보물 428호로 지정돼 있다. 절 입구 도로와 개울 건너편에는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수직 암벽 학소대가 보인다. 학소대 일대는 여름철 피서지로 소문 나 전국에서 인파가 몰려든다. 학소대앞 908번 지방도를 따라 영천과 청송 경계지점인 보현산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산과 호수가 어우러지는 절경이 이어진다. 군위댐 인근에는 댐 전망대와 삼국유사 일연공원 등 휴식공간이 드넓게 펼쳐진다. 여기서 더 달려 군위댐 상부지점을 가로지르는 교량을 넘어 고로면 학암리에 이르면 중국 아미산을 닮았다는 앵기랑바위산이 기묘한 모습을 자랑한다. 군위댐이 들어서긴 전 이 근처에는 이와 닮은 멋진 봉우리가 한 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다 물에 잠겼고 이 바위산만 남아 애잔함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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