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엑스포, 오는 2월 17일 ‘경주타워와 건축가 유동룡’ 현판식

▲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상징건축물 공모전 당시 이타미 준이 출품한 디자인안-1(사진 - (주)아이티엠유이화건축사사무소 제공)
▲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경주타워 유동룡 선생 신규 현판식을 앞두고 지난해 10월 기존 바닥 석판을 제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 경주타워와 경주엑스포공원 전경
▲ 故유동룡 선생(이타미 준) (사진 - (주)아이티엠유이화건축사사무소 제공)
‘이타미 준’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세계적인 재일 한국인 건축가 고 유동룡 선생(1937~2011, 예명 이타미 준)이 황룡사 9층 목탑의 실루엣을 품고 있는 경주타워의 원(原) 디자인 저작권자로 대내외에 선포된다.

(재)문화엑스포는 오는 17일 건축가 유동룡 선생을 경주타워의 원 디자인 저작권자로서 명예를 회복시키고, 12년간 이어져온 긴 법적공방에 마침표를 찍는 동시에 새로운 비전을 실현키 위해 현판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현판식은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주낙영 경주시장을 비롯한 경북도 및 경주시 관계자, 유동룡 선생의 장녀 유이화 ITM 건축사무소 소장,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를 제작한 정다운 감독 등 내빈이 참석한 가운데 경주타워 앞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행사는 디자인 표절 등으로 상처 입은 세계적인 건축가의 명예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마련됐다.

경주에서 가장 높은 경주타워는 지난 2004년 (재)문화엑스포가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상징 건축물 설계 공모전’을 거쳐 2007년 건립했다. 실크로드를 통해 신라에 들어온 로만글라스를 상징하는 유리와 철골구조로 만들어진 경주타워는 황룡사 9층 목탑을, 실제높이 82m(아파트 30층 높이)로 재현해 음각으로 새겨 넣어 신라역사문화의 상징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

공모전 당시 유동룡 선생의 출품작은 당선작이 아닌 우수작으로 뽑혔는데 지난 2007년 8월 완공 후 경주타워의 모습이 유동룡 선생이 제출한 설계와 유사하다며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다.

이후 5년간 계속된 법정공방 끝에 서울고등법원의 선고와 대법원의 상고기각 판결이 확정됨에 따라 원 저작권자가 유동룡(이타미 준)임을 명시한 표지석이 2012년 설치됐다. 하지만 경주타워 우측 바닥 구석에 위치한 표지석이 눈에 잘 띄지 않는데다 지난해 9월, 표시 문구의 도색까지 벗겨져 유동룡 선생의 유가족은 지난해 9월 ‘성명표시’ 재설치 소송을 진행했다.

이때 문화엑스포 이사장인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경주타워의 저작권 침해 소송과 관련한 일련의 내용을 보고받고 원 디자인에 대한 인정과 적극적인 수정조치, 저작권자인 유동룡 선생의 명예회복 등을 지시하는 대승적인 결단을 내리면서 이번 현판식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철우 지사의 지시에 따라 엑스포 측은 바닥에 설치돼있던 표시석을 곧바로 철거하고 유동룡 선생의 유가족과 새로운 현판 제작에 따른 내용 및 디자인 협의에 들어갔다. 이런 노력을 보이자 유동룡 선생의 유가족은 ‘성명표시’ 재설치 소송을 2019년 10월 취하했다. 엑스포 측은 유동룡 선생 타계 10주기를 맞는 2021년에는 특별 헌정 미술전 등 추모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17일 오후 1시30분 ‘경주타워와 건축가 유동룡(ITAMI JUN)’ 현판식을 통해 경주타워의 저작권자가 유동룡 선생임을 명확하게 밝히고 이 같은 과정을 직접 설명할 예정이다.

경주타워 앞에 새롭게 자리한 현판은 가로 1.2m, 세로 2.4m 크기의 대형 철재 안내판이다. 유동룡 선생의 건축철학과 2005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 2010년 일본 최고 권위 건축상 ‘무라노 도고상’ 등의 수상경력을 비롯해 제주핀크스 골프클럽 클럽하우스와 수·풍·석 박물관, 포도호텔, 방주교회 등 대표작을 내용으로 기록했다.

지난해 개봉한 유동룡 선생의 일대기와 건축철학을 다룬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2019년 개봉)’를 제작한 정다운 감독은 “영화를 통해 아타미 준과 경주타워 이야기를 이슈화 시켰는데, 이번 현판식이 열리는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탠 것 같아 영광”이라며 “경주타워가 이타미 준의 또 하나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며 많은 분들이 경주엑스포와 경주타워 방문하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국적을 초월해 세계가 인정한 재일 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1937~2011)은 재일동포 2세 건축가로 본명은 유동룡이다. 도쿄에서 태어나 자랐으면서도 끝까지 일본에 귀화하지 않았다. ‘조센징’이라 놀림당해도 꿋꿋하게 유동룡이란 한국 이름, 한국 국적으로 도쿄 무사시공업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하지만 한국이름으로는 취직이 되지 않았고 동네 카페, 식당 설계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유동룡이란 이름으로 사업을 하는데 제약이 많자 절친한 작곡가 길옥윤의 예명인 요시아 준에서 ‘준’을, 그가 생애 처음으로 한국에 올 때 이용했던 오사카 이타미 공항에서 ‘이타미’를 따와 예명을 지었다. 공항에서 따온 이 예명은 자유로운 세계인으로서의 건축가가 되자는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한국에서는 일본인, 일본에서는 한국인 대우를 받는 경계인의 처지도 나타나있다.

유동룡 선생은 조국에 대한 애착을 아끼지 않으며 건축 장소와 공간에 대한 고찰을 우선했다. ‘건축이 여행이고, 여행이 건축’이라는 철학을 작업의 기초로 삼았다. 제주도와 경주, 안동 등 전국을 다니며 고전 건축물과 미술품을 탐구해 영감을 얻었다. 특히 경주는 그가 생전에 자주 방문한 곳 가운데 하나로 지난해 개봉한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에도 불국사와 대릉원 등을 방문한 모습을 찍은 영상이 등장한다.

그는 2003년 프랑스 국립 기메박물관에서 건축가로서는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다. 이때 개인전 제목은 ‘이타미 준, 일본의 한국 건축가’로 기메 박물관은 ‘현대미술과 건축을 아우르는 작가, 국적을 초월해 국제적인 건축 세계를 지닌 건축가’라고 극찬을 보냈다. 경계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이타미 준이 오히려 한국이나 일본에 갇히지 않고 세계인으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이 개인전을 계기로 2005년 프랑스 예술훈장인 ‘슈발리에’와 2008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2010년 일본 최고 권위의 건축상인 ‘무라노 도고상’을 수상했다.

그의 설계와 작품은 지역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적인 미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고민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했다. 그가 제2의 고향이라고 여긴 제주도에 핀크스 골프클럽 클럽하우스, 포도호텔, 수(水)·풍(風)·석(石) 박물관, 방주교회 등 수많은 걸작들을 남겼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기념관을 설계한 유명 건축가 쿠마 켄고는 “이타미 준의 작품은 인간적 정서가 담겨있고 진실함이 서려있다”며 “한번 완공하면 끝나는 건축이 아닌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내는 이야기를 생각하는 작가”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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