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지난 1990년대 YS가 대통령할 때였다. PK인 YS가 경제라는 발음을 잘못해 갱제라고 발음한다고 놀리는 말이 있었다. 경남의 남해안 지역의 발음은 억세다. 그래서 ‘경’을 ‘갱’으로 읽는 사람도 있다.
YS는 아니지만 경상도사람을 놀린다며 기분 나빠했던 기억이 있다. 객지에서 대학 다닐 때 나의 경상도 발음을 놀리는 친구와 다툰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정책의 잘못과는 별개로 발음을 엮어서 비꼬는 태도에 화가 났던 것이다.
하지만 놀림의 대상이 경북사람이 아니고 경남사람이라며 애써 모른 척 했었다. 같은 경상도라고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 방언이 다르다. 안동을 중심으로 한 경북 북부지역과 대구를 중심으로 한 내륙지역 그리고 경남의 남해안 지역의 발음이나 조사 등이 서로 다르다고 한다. 다른 지역사람들은 구별하기 어렵지만 경상도 사람들끼리는 구분이 가능하다.

그 후 직장에서 서울지역에 파견 근무할 때였다. 경남에서 온 한 직원이 우리 사무실로 전입했다. 서로 인사를 하다가 옛날 일이 생각나 “나는 ‘경’북 출신이지만 당신은 ‘갱’남 출신”이라는 말을 했다. 악의가 없었기 때문에 웃으며 넘어갔다. 같은 경상도 출신끼리는 충분히 이해되는 농담이다.
사실은 포항출신인 내가 경남사람을 놀리면 안 된다. 대학에서 언어학을 공부하면서 조사해보니 포항지역의 방언은 대구보다는 오히려 부산이나 마산 등 경남 남해안 지역의 발언과 더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의외였다고 생각했는데 따져보면 방언이 형성될 때 해안과 내륙의 차이는 행정구역이나 단순한 직선거리의 차이보다 더 큰 장벽이 되었던 것이다.

2020년은 경자년이다. ‘경’이라는 글자가 들어간다. 경자를 사람이름으로 빗대어 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떠돈다. 어떤 편의점에는 “사랑해요 경자씨”라는 플랭카드도 붙어있다. 그런데 경상도 사람 중에 발음을 잘못하여 갱자년이라고 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때 경자씨는 갱자씨가 된다.

갱자년이라. 촌스럽기는 하지만 경자년 보다는 친근하게 들린다. 경을 갱으로 읽는 것이 발음이 잘못되거나 실수가 아닌 자연스런 경우는 글자가 두가지 모두 읽을 수 있는 경우이다. 경으로도 읽을 수 있고 갱으로도 읽을 수 있는 글자 중에 更이 있다. 서로 다른 독음과 뜻을 가진 동자이음이의어(同字異音異義語)로서‘고칠경’도 되고 ‘다시갱’도 된다. 예를 들어 追加更正豫算에서는 고칠경이고 更新에서는 다시갱이다.
그런데 어떤 음으로 읽어야 할지 구분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취직하기 위해 한국사를 공부할 때 읽은 내용인데 고려초의 토지제도는 전시과이다. 이것이 개정되면서 시정전시과와 경정(更定)전시과로 이어진다. 경정전시과의 更은 갱으로 읽어도 되기 때문에 갱정전시과로 표기된 문제집도 있었다.

설날이 지났다. 그런데 설날이 조금 일직 와서 연초에 하는 일들 중에서 설날 이후로 미뤄진 것들이 있다. 그중에서 정식은 아니지만 신년교례회 성격을 띈 모임에 참석했다. 신년교례회는 설날 이후에 하기는 좀 이상하다. 그리고 미뤄진 이유가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었기에 당시는 전체적으로 좀 무거운 분위기였다.
돌아가면서 인사말씀을 하는 순서가 있었다. 나도 인사를 하면서 경자년 새해라고 시작하려는데 나도 모르게 갱자년이라는 말이 나왔다. 갑자기 나오는 재치기를 참으려다 보니 그런 실수를 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갱자년이란 발음을 듣고 웃는 사람이 생기면서 분위기가 좋아졌다. 분위기를 좋게 하려고 일부러 그렇게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이왕 실수를 한 김에 경자를 갱자로 읽으며 말을 이어갔다.
“갱자년이라. 그래 更자년이죠. 다시 해보는 겁니다. 꼭 양력 1월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양력 1월 1일부터 경자년이고 음력 1월 1일부터는 更子年입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연초에 몇가지 실수를 했다. 그러다 보니 올해는 실수로서 시작하는 모양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부터 잘하면 다시 시작하는 것이 된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좋게 생각하려고 한다.

편의점의 ‘경자씨 사랑해요’ 라는 플래카드는 아직도 여러 곳에 붙어 있다. “좋아요 갱자씨!, 다시 올해를 시작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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