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범 포항시 농식품유통과 농식품산업팀장

▲ 이상범/포항시 농식품유통과 농식품산업팀장
“누구누구 어른 아침 드셨는교?” 어릴 적, 그러니까 70년대만 해도 자주 듣던 아침인사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 내 고향 경주 시골마을에도 보릿고개 정도는 아니지만 끼니를 걱정하는 가정이 더러 있었고 당연히 그런 아침인사도 자연스럽게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만큼 배불리 먹는 것이 삶의 소중한 가치였던 시절이었고 그 중에서도 갓 지은 쌀밥을 매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집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당연히 흰쌀밥을 먹는다는 것은 부의 상징이었고 직장을 구할 때도 ‘밥은 굶지 않는다’고 하면 좋은 직장으로 알던 그런 시절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을 꼽으라면 대부분 김치나 불고기를 말하지만 하루 세끼 꼬박꼬박 먹는 밥보다 많이 먹는 음식이 또 있을까? 밥 이외의 음식은 밥맛을 돋우고 밥에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하는 조연에 불과할 뿐이다.

쌀은 밀, 옥수수와 함께 세계 3대 곡물이다. 세계인구 15억명의 주식이고 우리나라 농정의 핵심이기도 하다. 70년대 보릿고개 해결과 주곡 자급이라는 국정목표의 산물로 탄생한 통일벼(IR667)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역사적인 쌀 자급률 100%를 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40여년이 흐른 지금, 빵과 육류 소비는 꾸준히 늘어난 반면 연간 1인당 쌀 소비량은 1979년 136kg에서 2019년에는 59.2kg으로 절반 이하 수준까지 줄어들면서 성인병 발병률은 증가하고 있다. 우리 몸에 맞지 않는 음식을 구별 없이 먹기 때문이 아닐까? 밥 중심의 식단이 건강 유지에 유리하다는 사실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서양에서도 빵 대신 밥을 먹자는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으니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쌀은 흔히 생각하듯 농가의 주요 소득원이란 점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더해 쌀은 다양한 공익적 가치도 있다. 요즈음 공익형 직불제 도입과 함께 부쩍 회자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벼농사는 농경문화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 민족문화의 뿌리이자, 우리 국토를 가꾸고 농촌사회를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산업이기도 하다. 논은 여름철 집중호우 피해를 방지해주는 거대한 댐의 역할도 한다. 우리나라 전체 논의 저수량은 22억톤 정도로 팔당댐 저수량의 9배나 많고 우리나라 전체 다목적댐의 홍수조절 능력과 맞먹는 양이다. 또한 매년 60억톤의 지하수를 보충해 주는 논은 수자원 확보를 위해서도 반드시 유지되어야 하는 소중한 자원이다.

이밖에도 수질 및 대기 정화, 조류의 서식지 제공, 농촌경관과 전통문화 보전, 휴양 및 레저 공간 제공 등 논과 쌀산업이 가진 연간 공익적 기능은 약 33조원에 달한다는 게 정부의 분석이다.

이렇게 벼농사가 가진 유·무형의 소중한 가치를 망각한다면 주식인 쌀산업 기반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다. 이는 우리농업의 근간과 식량안보를 무너뜨리고, 전통문화의 붕괴라는 무서운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 아침 끼니거리가 없어 고민하던 중 켜켜이 쌓인 눈 더미를 헤치고 방문을 여는 순간, ‘설 명절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이라고 챙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란 메모만 남긴 어느 독지가가 두고 간 쌀 포대를 보면서 그토록 고맙고도 서러운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었다”는 강원도 어느 산골 장애아동시설 목사님의 모습을 떠올린다.

쌀 한 포대의 관심이 강물처럼 흐르기에 우리사회는 아직 살만하며 그 쌀은 더 이상 목숨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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