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태 시사평론가

벌교, 순천, 하동을 설 연휴에 돌아봤다. 남녘 어드메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릴 것이라 믿었다. 살랑거리는 바람 따라 서성이고 있을 봄과 마주하고 싶었다. 조정래와 김승옥, 박경리를 그들 문학관에서 만나볼 요량도 내심 있었다.

‘벌교는 한마디로 일인들에 의해서 구성, 개발된 읍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벌교는 낙안 고을을 떠받치고 있는 낙안 벌의 끝에 꼬리처럼 매달려 있던 갯가 빈촌에 불과했다. 그런데 일인들이 전라남도 내륙지방의 수탈을 목적으로 벌교를 집중 개발시킨 것이었다’(태백산맥).

홍교와 금융조합을 살펴보고 유명하다는 빵집에서 홍국쌀 빵을 샀다. 주인 여성의 깔끔한 표준말씨가 어떤 배경음악처럼 들려 온다. 막 나온 빵은 뜨거웠고 두툼한 무게감이 손에 닿았다. 한 웅큼 빵을 호호 우물거리며 보성여관을 찾았는데 마침 휴무다. 유리문에 이마를 대고 내부 풍경을 살피며 다음에 꼭 묵으리라 아쉬움을 달랜다.

벌교천이 내려다 보이는 신축 호텔에 간단한 짐을 풀고 소화다리를 걸어서 넘었다. ‘소화다리 아래 갯물에고 갯바닥에고 시체가 질펀허니 널렸는디 아이고메 인자 징혀서 더 못 보겠구만이라… 사람 쥑이는 거 날이 날마동 보자니께 환장 하겄구만요’(태백산맥). 일본 연호 소화가 다리 이름에 붙었다는 간판을 휴대폰에 찍어 담았다. 총소리, 비명 소리, 피 냄새가 어디선가 날아오는지 눈을 감고 주의를 집중해 본다. 저녁 밥상에 나온 싱싱한 벌교 꼬막에 자꾸 손이 가는데도 물리지 않았다.

조정래 김초혜 작가 부부를 만난 것은 1998년 10월 베이징에서다. 필자는 아직 파릇했고 그 분들도 청년처럼 젊어 보였다. 포항제철 고 박태준 회장 평전 중국어 출판기념회 행사로 같은 호텔에 머무르고 있었다. 당시에 태백산맥을 제대로 읽지 않아 그 분들과 대화는 의례적인 수준을 넘지 못했다. 이후 그 부분이 오랫동안 아쉽게 느껴졌다. 조정래 선생은 고 박태준 회장을 진심으로 혹은 작가정신으로 예찬했다. 낙안읍성의 오래된 정취를 둘러보는 내내 문학의 ‘앙가주망(현실 참여)’을 떠올려 보았다.

순천만국가정원 가는 길 웃장(아랫장도 있다) 국밥집에서 후한 아침상을 받았다. 고마움을 넉넉히 건넸더니 정직한 엄마, 아빠, 딸은 풋풋한 미소로 한사코 되돌려 준다. 주고 받은 온정에 쌀쌀한 날씨가 따수워진다. 침이 마르도록 국가정원을 추천한 친구 얼굴을 떠올리며 한바퀴 돌았다. 계절적 살풍경 탓인지 그다지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 순천문학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약간은 들뜬 기분으로 바뀌었다. 무진의 흑두루미들이 끼루룩 퍼득퍼득 힘찬 비행으로 손님을 반긴다. 늘씬한 갈대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봄을 깊이 기일게 들이켜 본다.

김승옥 작가에 대해서 막무가내식 좋은 감정이 있었다.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 출간이 1964년이다. 필자와 같은 해 세상에 나온 작품들에 대한 혈육적 동질감과 작가가 포항에서 유년기를 보냈다는 공간적 친밀감이 원인이다. 탁월한 작품성에 대한 존경심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 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무진기행) 이번 봄나들이를 나설 때도 그랬고 어딘가를 향해 행장을 꾸릴 때면 언제나 ‘무진기행’ 같은 글을 꼭 써 보리라 마음 먹게 된다.

경남 하동군 평사리로 들어서자 섬진강 모래 사막이 느릿느릿 펼쳐진다. 자글자글 은빛 알갱이들의 이야기가 아지랑이로 타올랐다. 근대 조선의 땅덩어리가 민초들의 토지로 탈바꿈하는 역사가 이곳에서 씌어졌다. 소설 토지 최고 문장이 아래 대목이라는 데 주저하고 싶지 않다.

‘쓸쓸하고 안쓰럽고 엄숙한 잔해 위를 검시하듯 맴돌던 찬바람은 어느 서슬엔가 사람들 마음에 부딪쳐와서 서러운 추억의 현을 건드려 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하고많은 이별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흉년에 초근 목피를 감당 못하고 죽어간 늙은 부모를, 돌림병에 약 한 첨을 써보지 못하고 죽인 자식을 거적에 말아서 묻은 동산을, 민란 때 관가에 끌려가서 원통하게 맞아 죽은 남편을, 지금은 흙 속에서 잠이 들어버린 그 숱한 이웃들을, 바람은 서러운 추억의 현을 가만가만 흔들어준다.’(토지)

등장인물 문패와 함께 이야기가 재현되어 있다. 우적우적 여물을 되새김질 하는 황소가 사실감을 더해 준다. 최참판댁이 정여창의 집을 본떠 허구를 실제화 했다는 설명에는 적잖게 놀랐다. 문학의 힘이란 참으로 대단하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박경리 유고 시집과 함께 남해고속도로를 달려 왔다. 봄도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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