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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읽는 세상] 충절과 대의를 품은 오천서원
   
▲ 충정묘로 四賢을 모신 사당
   
▲ 오천서원 강당과 숙소인 동재와 서재
   
▲ 오천서원 편액이 있는 강당
   
▲ 오천서원 강당과 숙소인 동재와 서재
오천서원은 고려 때 추밀원주지사를 지낸 정습명, 고려충신 정몽주 양 선생을 모신공간으로서 조선 14대 선조(1588년)때 지방유림의 발의에 의하여 오천 청림에 건립된 사액서원이다.

조선 18대 현종 대에 오천 원동리로 이전하였고, 사당을 지어 정사도, 정철 두 분 선생을 추향하여 4현(四賢)을 모셨으니 모두 학덕과 충절로 역사에 길이 남은 명현(明賢)들이시다. 성리학 이론의 시조인 정몽주 선생께서는 대의(大義)로 고려사직을 마지막까지 지키다 선죽교에서 태종 이방원의 부하에게 목숨을 잃고, 선죽교에 혈흔을 뿌려 절의(絶義)와 대의를 역사 속에 남기었으니 후세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이정표가 되셨다. 포은 선생의 탄생지는 영일문충이고 묘는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에 모셨다. 태종 이방원은 문충공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영일오천 선비들은 사현을 모시고 성현의 길을 추구하며 수백년에 걸쳐 수기치인(修己治人)을 목적으로 오천서원에서 공부하였다. 그러나 고종 오년(1868년)에 서원이 철폐되었다, 향림(鄕林)의 선비들이 부단히 제사를 봉행해오다 중의를 모아 고종 말엽에 서원을 복원하였으며, 다시 1975년에 재건하였다.

경내 건물은 사당인 충정묘, 강당인 오천서원, 숙소인 동재와 서재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건물은 정확한 직선의 중심축위에 있어서 유학의 중요한 규범 가운데 하나인 중용을 구현하고 있다. 중용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않고 바뀌지도 않는 것으로 모든 행동의 규범이 되는 것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려면 대칭의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유교적 예법은 대칭과 균형을 강조한다. 유학의 시조를 모신 오천서원은 중용과 충정의 정신을 담아 안고 옛사람과 현시대를 잇고 있고, 포은 정몽주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충정묘 뒷산에는 푸른 대나무 숲이 우거져 천년을 내려오는 선생의 절의를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글/이을숙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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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서원 강당과 숙소인 동재와 서재

오천서원 편액이 있는 강당

오천서원 강당과 숙소인 동재와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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