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렬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장

저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재난피해자 심리치료를 하며 살아온 정신과 전문의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한 것이 2007년 말 충남 태안에서 발생한 ‘허베이 스피릿호 해양오염사고’ 당시 보건복지부 재난심리지원 현장업무를 총괄하면서부터였으니 벌써 10년 이상 세월이 흘렀다.

그때만 해도 이 일을 계속하게 될 줄 몰랐는데, 그 후 경주지진, 포항지진, 밀양 세종병원 화재, 그리고 지난 해 진주 살인·방화 사건 등 대형재난 현장에서 보건복지부 심리지원 업무를 총괄하다 보니 어느덧 이 일이 저의 업(業)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인연으로 지난 해 8월, 국립부곡병원장을 퇴임한 후 현재는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 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예전에는 정신과 의사로서 정신질환자 진료와 국립기관장으로서 행정업무에 겸해 이 일을 했었는데 이제는 오직 ‘재난트라우마’ 분야만 다루는 사람이 된 것이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하는 일은 지진트라우마로 고통받는 분들의 마음을 치유하는데 전념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전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새로 배우기도 하고, 이미 알고 있던 것도 그 의미가 좀 더 깊어지고 좀 더 와 닿게 된다. 그 결과 저의 삶과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안목에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고,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조금씩 생기는 것 같다.

앞으로 이 난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한다. 뭐 그리 대단하지 않은 사연이나 별 새로울 것 없는 통찰일 수도 있지만, 지금 현재 지진피해를 딛고 일어나 다시 자신의 소중한 삶을 가꾸어 나가기 위해 분투하는 포항시민으로부터 생생하게 배우는 이야기는 또 다른 누군가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훌륭한 처방이 될 수도 있다.

어차피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삶은 예측할 수 없이 닥치는 사건·사고와 그로 인한 트라우마에서 절대 자유롭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을 소중히 가꿔나가야 할 책임은 여전히 우리 자신에게 있으니 그런 처방 몇 개 정도는 상비하고 있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주요경력
-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및 동대학원 졸업
- 중앙대학교 부속병원 인턴/레지던트 수료(1991년)
- 정신과 전문의 취득(1991년)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경영 고위과정 수료(2008)
- 국립공주병원 병원장(2008년)
- 국립부곡병원 병원장(2014년)
- 영남권 국가트라우마센터 센터장(2014년, 겸직)
-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사고 심리지원 활동
- 2016년 9월 경주지진 심리지원 활동
- 2017년 11월 포항지진 심리지원 활동
- 2019년 10월~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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