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경주시청, 한국문화재재단, 경주 읍성 동벽 치성에서 확인

문화재청, 경주시, 한국문화재재단이 추진 중인 경주읍성 복원정비 사업부지(5구간)내 유적 발굴조사 중 조선시대에 축조된 성벽에서 통일신라시대 석탑에 사용된 팔부중상(*하단 설명 첨부) 면석 3매가 기단석으로 재사용됐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읍성 동벽의 치성 기단석으로 사용
‘팔부중상’이 부조된 탑재 3매는 읍성 5구간(경주읍성의 동문(향일문) 및 성벽의 북쪽구간으로 북벽으로 연결되는 구간)의 체성 벽에 덧대어 있는 치성의 가장 아래인 기단석으로 사용됐다.

5구간에서 치성은 현재 1개소만 확인됐는데, 최근까지 주택이 있었던 자리로 기초석과 기단석(치성을 올리기 위한 기초석의 범위는 동서 길이 11m, 남북 너비 11m이며, 치성 기단석의 범위는 길이 10m, 너비 8m) 정도만 남아있다.

팔부중상이 부조된 면석 3매는 치성 기단의 북쪽과 동쪽 모서리를 연결하며 놓여 있으며, 기단석에는 팔부중상의 면석 이외에도 탑 부재들과 건물 터의 주초석 등이 사용됐다. 현재 기초석의 침하로 팔부중상 면석들은 한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상태이다

팔부중상의 부조 면이 위로 보며 놓여 있기 때문에 치성이 축조됐을 당시에는 그 위로 많은 석재들이 올려져있어 성벽 외부로 상이 아예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남·북면의 팔부중상만 확인
‘팔부중상’면석 3매에는 각 1매에 1쌍의 팔부중상이 부조 돼 있다. 이번에 출토된 팔부중상은 탑의 서탑의 서쪽(천·가루라)에 사용되는 면을 제외한 북쪽(긴나라·마후라가)·남쪽(아수라·건달바)·동쪽(야차·용)에 사용하는 3면(북쪽면: 길이 148cm, 너비 75cm, 남쪽면: 길이 184cm, 너비 75cm, 동쪽면: 길이 166cm, 너비 75cm)의 면석이 발견됐다.

◇9세기 중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
현재까지 경주지역에서 확인되고 있는 팔부중상이 부조된 석탑 및 탑재(경주지역에서 팔부중상이 부조된 석탑 및 탑재는 담엄사지 석탑재, 창림사지 석탑, 남산리사지 서탑, 숭복사지 동·서탑, 인왕동사지(傳 인용사지) 동서탑재, 사사제지 탑재 등이 있음) 중에서 동일한 도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조각 전체가 8세기대의 조각양상에 비해서 정교하지 못한 편이고, 천의 자락 날림이 부자연스럽고 손 모양도 변형된 점 등으로 미뤄 9세기 중반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관련 전공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경주읍성(사적 제 96호인 경주 읍성의 최초 기록은 ‘고려사(高麗史)’, ‘병지(兵志) 성보조(城保條)’에 현종(顯宗) 3년(1,012년)에 성을 쌓았다는 내용과 동경잡기(東京雜記)에 고려 우왕(禑王) 무오(戊午)년(1378년)에 석성(石城)으로 개축됐다는 기사가 있음)의 치성은 발굴조사를 통해서 체성과는 별도로 축조된 것으로 확인되며, 문헌기록을 통해서도 조선시대 세종(1418~1450년)연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문화재재단 박종섭 팀장은 “치성이 조선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볼 때 팔부중상 석탑재가 성벽의 석재로 사용됐다는 것은 당시의 사상적 배경과 불교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밝혔다.

*팔부중은 부처의 설법 청중을 구성하는 다양한 무리 중 하나로, 인간 이외의 다양한 존재를 일컫는 집합적 용어임. 천(天)·가루라(迦樓羅), 용(龍)·야차(夜叉), 건달바(乾闥婆)·아수라(阿修羅), 긴나라(緊那羅)·마후라가(摩喉羅伽) 등 하늘의 천신(天神), 땅에 사는 지신(地神)과 축생(畜生), 물에 사는 수신(水神), 그리고 인간도 신도 아닌 반인반신(半人半神)이나 귀신같은 것들을 의미함. 팔부중상 면석은 다른 나라 탑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고 통일신라시대 석탑에서 창안된 독특한 부조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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