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렬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장·정신과 전문의

▲ 이영렬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장
지난 19일 수요일이었다. 오전 상담을 끝내고 나니 센터 직원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와 “센터장님, 오늘 대구에 확진자가 많이 나와 50명을 넘었대요”라고 하길래 “어, 그래? 그러면 포항도 조심해야겠네”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꼭 일주일 전이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현재, 확진자는 1천200명을 넘었고 한 명도 없던 코로나 사망자는 무려 12명이나 나왔다. 이제는 우리 일상까지도 조금씩 휘청거리고 있다. 우리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도 감염방지를 위해 문을 닫았다. 언제 다시 열거라는 기약도 없다. 대만에 시집간 딸은 호흡기가 안 좋은 아빠가 걱정되어 자꾸 전화하면서 조금 더 지나면 한국인은 대만으로 아예 못 들어올 수 있으니 지금 빨리 들어오라 한다. 어찌 이럴 수가… 그것도 일주일 만에… 중국의 어려움은 우리 어려움이라고 응원이나 할 때가 좋았는데, 이제는 우리도 중국처럼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입이 바짝 마른다. 이 정도면 재앙이다.

재앙을 한자(漢字)로 풀면, 재(災)는 불(火)처럼 확 닥치는 나쁜 일이란 뜻이고, 앙(殃)은 초자연적 존재로부터의 징벌이란 뜻이니, 결국 갑작스레 닥치는, 사람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재난이란 뜻이 되겠다. 반면 재앙을 영어로 풀면 좀 의미가 달라진다. 우리 말의 재앙 또는 재난에 해당하는 영어는 disaster인데, 여기서 dis~는 없다는 뜻이고, aster는 별이라는 뜻이다. 즉 하늘의 별,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북극성 같은 별이 갑자기 사라져 사람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혼돈에 빠진 것을 재앙이라 정의한 것이다.

요새 속어로 하면 사람들이 ‘멘붕’에 빠진 게 곧 재앙인 것이다. 방향을 알려주는 별이 사라진 것이 재앙이라… 그러고 보니 모든 재난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컨트롤 타워와 리더십이고, 이 리더십이 엉망이면 천재(天災)가 인재(人災)가 되고 사소한 사고도 대형 재난으로 발전한다. 영어 좋아하는 친미주의자는 아니지만 트라우마 관련업을 하는 입장에선 재앙의 영어 풀이가 더 마음에 와닿는다.

그러면 재앙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없어진 별을 다시 만들어 띄우는 것이 되나? 논리상 그렇겠다. 그런데, 인간이 어찌 하늘의 별을 만들어 띄운단 말인가. 그러니 ‘이 재앙을 어찌할꼬…’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것이다. 한 가지 차선책은 있다. 별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또 어디에? 바로 우리 마음속에도 왕별이 하나 있다. 인간은 하나의 소우주(小宇宙)이기 때문이다.

그 소우주의 북극성을 보통 ‘생명의 소망’이라 부른다. “살아야 하고 살려야 한다”는 말보다 우리 가슴을 더 뜨겁게 만드는 구호는 없다. 사실 재난현장에서 리더십이나 컨트롤 타워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재난으로부터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는 삶의 의지에 집중하는 것이다. 우선 살고 봐야 하고, 살리고 봐야 한다. 잘잘못을 가리고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은 그다음이다. 이 원칙에 충실할 때, 피해자들의 트라우마가 최소화된다. 이것은 여러 재난현장을 체험하면서 필자가 분명히 확인한 사실이다.

지금은 나와 내 가족이 이 몹쓸 병에 걸리지 않고, 살아남는 데에만 집중해야 한다. 우선 걸리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이미 온 나라에 바이러스가 퍼져 그게 쉽지 않다면 절대 죽지라도 말아야 한다. 사실 코로나가 왜 무서운가? 죽을 수도 있는 병이기 때문이다. 이게 가벼운 감기 같은 것이라면 전 국민이 다 걸린들 무슨 큰일이겠는가. 그러니 코로나 극복의 최우선 목표는 살아남는 것이 되어야 한다. 내가 살고, 가족이 살고, 여력이 된다면 내 이웃도 같이 살게 도와주어야 한다. 즉 이제 이 병의 사망률을 낮추는 데 우리의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역사회 감염기에는 확진자 동선 추적이 점점 의미가 없어지고, 확진자 수를 낮추는 노력도 점점 힘겨워진다. 그래서 이 시기 방역대책의 중점은 바이러스 전파차단보다 바이러스 감염피해 최소화로 옮겨가게 된다. 그런데 그 감염피해 최소화의 핵심은 무엇보다 사람의 목숨을 지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우리 경제나 외교가 피해를 덜 받도록 하는 데 아무리 많이 노력을 기울여도 사망률이 최고점을 찍는 상황이 되면 다 헛수고가 될 것이다. 그런데 매우 우려스러운 것은 현재 우리나라 코로나 사망률은 후베이성을 제외한 중국 통계보다 월등히 높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박쥐 파는 우한시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의료수준도 우리가 더 나을 텐데 이건 말이 안 된다. 우리의 코로나 진료 대응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전문가 집단이 최초에 권고했던 ‘철저한 1차 방역’에 실패했으면, 이제 두 번째로 전문가 집단이 강조하고 있는 ‘환자 경중에 따른 효율적 의료자원 운용’만이라도 제대로 해내야 한다.

사망자 기저질환 탓만 하고 있는 건 직무유기다. 중국은 기저질환을 동반한 코로나 환자가 없겠는가. 기저질환자, 감염취약계층은 전 세계 어디나 다 있고, 그것을 감안해 산출한 사망률로 국가 간 비교를 하는 것이다. 특히 뻔히 보이는 사망위험군을 계속 열악한 환경에 방치하여 자꾸 신규 사망자를 추가하고 있는 청도 대남병원 경우는 특단의 개입이 필요하다. 경제나 외교는 이 상황이 좀 진정되고 나서 그 미흡함을 충분히 바로 잡을 수 있다.

누가 잘했고 못했고의 논쟁도 두고 두고 대를 이어가며 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낼 방법은 없다. 그래서 정말 그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되지만, 혹 훗날 역사가 오늘 이 상황을 “2020 코로나 대참사”라고 규정하게 된다면, 그건 바이러스로 인해 나빠진 경제나 불편해진 외교 때문이 아니라 이 병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숫자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욕할 때도, 분석할 때도 아니다. 확실하지 않은 소문에 휩쓸려 다니거나 무의미한 논쟁에 뛰어들어 말 같지 않은 말에 핏대를 올릴 때는 더욱 아니다. 그런 행동들은 우리 면역력만 저하시켜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하게 만들 뿐이다. 지금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이 병에 걸리지 않는 것에만 집중해야 할 때다. 만일 걸렸으면 빨리 검사받고 제대로 치료받는 데에만 집중하여 더 큰 화를 면해야 한다.

그리고 조금 여력이 된다면, 내 주위의 누군가도 챙기고 살펴 다 함께 이 어려운 시기를 무사히 넘기도록 하자. 그 외 다른 것들은 나중에 천천히 해도 된다. 내 안에 빛을 가진 자는 밖의 어둠이 두렵지 않듯, 내가 해야 할 바와 내가 가야 할 길을 확실히 알면 별이 없어지는 재앙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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