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2월의 마지막 날인 지난 주말 하루종인 집안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영락없는 자가격리다. 그 전주에 이어 두주 연속이다. 물론 나만 이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온 국민이 외출을 삼가고 두문불출한다. 길거리에는 인적이 사라졌다. 금요일 퇴근하면서 본 텅 빈 시내버스가 애처로웠다. 시외버스는 운행 자체를 줄였다고 한다.

다행히 나는 아직까지 가족이나 직장동료 중 확진자나 접촉자가 없어 의무적인 자가격리 대상은 아니지만 가족들이 외출을 싫어해 어쩔 수 없다. 아무도 안심할 수 없다. 이럴 때 함부로 돌아다니면 욕을 먹는다.

외출할 때 마스크가 필수품이다. 예전에는 길에서 마스크를 낀 사람을 보면 몸이 안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범죄자 같은 인상이라는 느낌을 가졌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마스크를 끼지 않는 사람과 마주치면 멀직이 돌아서 지난다. 마스크를 끼지 않고 밖으로 돌아다닐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하루 종일 집안에만 있으려니 답답하다. 주말에 할 일이 많았는데 밖에서만 할 수 있다. 집에서는 딱히 할 일이 없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검색하는 것이 전부다. 남자는 바깥양반이라는 말이 있는데 안주인처럼 지내는 것이 쉽지 않다. 나만 답답한 것이 아니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얼굴을 마주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부작용도 있다. 장보러 나갈 수 없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마트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반찬거리가 없어 냉장고 파먹기를 한다. 냉장고 속에 남아있는 먹을 만한 음식을 찾는다. 그런데 숨겨진 식료품이 생각보다 많았다.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했었는데 막상 보니 언제 구입했는지 모르는 식재료가 많아 황당했다. 유통기간이 한참 지난 아이스크림을 버리려니 너무 아까웠다.

고3인 딸의 공부도 문제다. 원래 이번 주에 개학해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3월 9일로 연기되었다. 그러나 대구는 상황이 심해서 3월 23일까지 추가로 연기된다. 봄방학 기간이 겨울방학보다 더 길어질 판이다. 지난 2017년 11월 지진으로 수능이 연기되었을 때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는데 다시 그런 상황이다. 자주 있으면 공교육의 안정성이 문제가 된다.

어쨌거나 딸의 대입공부가 비상이다. 집에만 있으면 리듬이 깨진다. 학교나 학원에 갈 수도 없다. 집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거실을 공부하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가구와 짐을 재배치하였다. 책이나 잡동사니는 베란다로 옮기고 서재의 책상과 의자를 거실로 옮겼다. 그러다가 처음 보는 수납공간을 발견하였는데 옛날에 애지중지 하던 짐들이 있었다. 5년 전에 이사 왔는데 그동안 있는지 몰랐던 곳이다. 집안 구조에 얼마나 무심했는지 증명이 된다.

올해 하반기로 예정된 이사를 할 때 이곳의 짐은 손도 대지 않고 떠났을 판이다. 이사 갈 아파트는 지금 한참 공사 중이다. 그런데 요즘 코로나로 공사장에도 비상이 걸려서 건축이 중지된 곳이 많다. 시간에 맞춰 이사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어렵게 마련된 공간에서 딸이 공부를 하려니 층간소음이 문제다. 윗층도 외출이 안 되어 아이들이 집안에서만 뛰어노는지 무척 시끄럽다. 짜증을 내는 딸에게 참을성을 길러야 한다고 타이르면서 수능을 준비하려면 이런 환경을 이기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해 주었다. 나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지만 내색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생활이 언제까지 갈까. 빨리 끝나야 할 텐데. 외출을 할 수 있다면 등산이나 낚시를 통해 답답한 마음을 달래곤 하지만 불가능하다. 답답한 마음에 좁은 집안을 둘러보지만 답은 없다.

이왕 이렇게 되었는데 집에만 있는 시간동안 차분히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겠다. 몰랐던 공간을 발견한 것처럼, 알 수 없었던 자신의 모습을 알게 된다면 어쨌든 하나는 건지는 것이다. 그나마 나는 당장 생계곤란까지는 겪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사하면서…

외출이 없으니 영업을 할 수 없는 자영업자들은 손실이 크다고 한다. 손님이 오지 않아 그냥 문을 닫는 식당도 있다. 나도 지난 금요일에 학교동창생들과 모임이 취소되어 갈 수 없었다.

이들을 위한 대책이 필요한데 막막하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을 맞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을 겪는 것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일들을 모두 다시 살펴보아야 할 판이다.
나의 답답함은 나 혼자 참으면 그만이지만 이들의 문제는 국가나 온 국민이 나서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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