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태 시사평론가

주변 세계를 인식할 때부터 필자는 기독교인이다. 세상에서 첫번째 기억은 새벽기도다. 추운 새벽 어느 날 교회를 향한 발걸음이 삶의 첫걸음이 되었고 새벽기도는 평생 습관이 되어버렸다. 산타클로스를 열두 살까지 믿었고 청소년기는 한국 교회 성장동력인 ‘부흥회’와 함께 보냈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종교’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불교, 이슬람교 등을 기독교와 같은 반열에 올리게 된다는 이유다. 십계명 제1조 유일신 사상에 철저한 원리주의자였다.

거짓과 사이비에 대한 거부감으로 정통을 향한 지향성은 나날이 강화되었다. 오리지널과 진짜에 대한 맹렬함은 인간관계에서도 엄격한 척도를 들이대게 했다. 악의에 바탕을 둔 거짓과 인간의 나약함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위선을 분별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사이비에 대한 공격성은 정통에 대한 자신의 정보 체계를 철저한 검증없이 맹신하게 만들었다.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미화된 세상에서 이단은 악과 결탁하여 세력을 키워가고 있으며 다수의 신자들은 길을 잃었다.

기독교라는 관점에서 중국과 일본, 한국을 살펴보자. 중국은 진나라 시절 로마 제국과 교류가 있었고, 서구 문물과 초기 기독교 문화가 이 때부터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중화 문명이 세계적으로 확산된 칭기스칸의 원 제국은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를 믿는 지도층이 많았다. 종교개혁과 지리상의 발견 이후 서양 선교사들은 거대한 미개척지 중국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렸고 급기야 기독교를 악용한 ‘태평천국의 난’으로 이어졌다. 교주 홍수전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둘째 아들, 예수의 동생이라 칭하고 강력한 유일신 사상으로 민중들을 굴비처럼 엮었다. 19세기 중반 중국 사회를 흔들었던 이 사건으로 최대 삼천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종교혁명 이후 아시아에서 일어난 기독교 최악의 이단 참사였다.

일본은 약삭빠르게 서구에 문호를 열었다. 16세기 일본 전란을 진압한 토요토미 무사 정권은 네덜란드, 스페인, 영국 등과 교류를 확대하는 초기에 기독교를 장려했다. 당시 일본 전국에 약 40만 기독교인이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의 전범 가토 키요마사도 기독교도였다. 신의 음성을 듣고 조선을 침공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요즘 우리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목사들이 그 시절에 있었으면 하나님이 왜를 이용해 조선을 징벌하신다고 떠들어댔을까. 17세기 이후 도쿠가와 막부는 섬세하고 철저한 탄압으로 기독교가 자리잡을 여지를 없앴다. 선진국 중에 기독교가 정착되지 못한 유일한 나라다. 하나님이 일본에 상륙하면 하오리를 걸친 태양신으로 바뀌게 된다. 정통이 확립되지 못했으므로 아류와 이단이 발붙일 공간은 더더욱 없었다. 우스꽝스러운 것은 일본 아오모리현 헤라이라는 마을에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이 있다. 칭기스칸이 일본 사무라이 미나모토 요시츠네라는 주장과 함께 황당무계함의 끝을 보는 듯하다.

한국의 사이비 기독교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전도관, 통일교, 오대양, 다미선교회, 여호와의 증인, 기독교복음선교회(JMS), 구원파, 신천지 등 이단 꼬리표가 붙는 집단을 다 헤아리기 어렵다.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라는 간판이 붙으면 일단 정통으로 분류된다. 이른바 ‘추수꾼’들이 교묘하게 침투해 있으니 이 또한 별 의미가 없다. 오십 넘도록 성경을 보고 설교를 들어오는 필자도 잘 모르는 부분이 기독교 교리에 많다. 삼위일체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동정녀 탄생, 부활, 재림 등은 믿음을 허락해 주시도록 지금도 간절히 기도할 따름이다.

필자는 이단 연구 전문가 견해를 활용하여 나름대로 분별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먼저 스스로를 예수라 칭하는 가짜 교주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쉬운 듯 어렵다. 예수 그리스도가 중동계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왔고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온다는 약속을 믿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극단적인 종말론으로 사람을 겁박하여 현실을 부정하고 가진 것을 강탈해 가는 시스템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또한 히틀러나 괴벨스가 그랬던 것처럼 과도한 선전과 선동 메카니즘이 돌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북한 체조단보다 엄격한 규율과 복식 규정으로 인간을 옭아매는 교조주의는 정통이 배격하는 최악의 형식주의다. 신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정도로 사랑하는 인간에게 고통을 주면서 믿음을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앞서 고백했듯이 기독교 원리주의자를 자처한 필자의 가장 큰 오류는 독선이었다. 거짓 선지자와 적 그리스도라 생각되면 가차 없고 가혹한 공격을 퍼부으려 했다. 그런 행동을 하나님이 기뻐하리라는 망상 때문이었다. 종교 다원주의, 포스트 모더니즘의 음란함, 범신론을 허용하지 않겠지만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의 목에 맷돌을 달아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과오’는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들어 치라’는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바이러스 참사에 대한 책임은 신천지 집단이 지는 게 맞다. 인적, 물적 책임을 지겠다고 교주가 기자회견에서 밝히기도 했다. 신도 환자 및 접촉자 치료비, 의료기관 행정력 낭비, 국제 사회에서 코리아 브랜드 훼손 비용 등 일체를 신천지가 배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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