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현우 조각가의 스틸로 만든 비너스상이 포항 영일대해수욕장 거리에 웅장한 모습으로 서있다.
▲ 뒷모습.
포항 영일대해수욕장 거리에 소현우 조각가의 스틸로 만든 비너스상이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웅장한 모습으로 서있다. 그러나 이 비너스 조각상은 보티첼리가 그린 아름다운 미의 여신 '비너스의 탄생'에 나오는 아프로디테도, 이성과 규범의 모범을 보여주는 '밀로의 비너스' 조각도 닮지 않은, 신체 일부가 기계로 대체된 사이보그이거나 인공지능을 장착한 휴머노이드 로봇과 비슷한 모양으로, 중무장한 전쟁의 남신 아레스처럼 철갑을 두르고 서있다. 여성과 남성을 합친 듯한 남성화된 여성이다.

작가는 2050년에 탄생할 비너스를 상상하고 작품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나는 이 단단한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든 비너스를 보면서 현대, 이 시점의 대한민국의 여성에게 사회가 원하는 모델로 이 비너스 상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대한민국 현대 여성이 사회 집단이 요구하는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면서,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비너스나 평화를 사랑하며 지혜롭고 이성적인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아니라, 여성들은 싸움과 전쟁을 좋아하는 전쟁의 남신 아레스 처럼 남성화되어 번쩍이는 투구와 갑옷을 입고 전투적일 수밖에 없음을 은유하고 있는 것이리라.

여성은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서 남녀평등한 성역할이 아니라 사회집단에서 여성적이라 규정되어진 성역할만을 주문받아 왔다. 그러나 21C 남녀평등이 법에 명시된 사회에는 여성은 남성과 같이 2등분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도 해내고, 또 한편으로는 여성으로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모성의 역할과 사회적으로 여성의 역할이라 고정지어진 가사노동외 여성고유의 성역할까지 해내야하는 3중고를 강요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 한국사회에 잔존하는 남존여비와 여성 집단에서 요구하는 남녀평등 구호는 여성혐오주의라는 괴물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도 여성의 성적결정권 보장과 직장에서 여성차별을 없애고 여성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법적보장을 이루려는 미투 운동과 성차별 반대운동이 근대이후 최근 가장 격렬한 투쟁의 양상으로 벌어지고 있다.

견고한 철로 만들어진 '사이보그'적인 모습의 상상 속 2050년 비너스는 여성들이 세상이 바라는 모든 것을 유능하게 잘해내기를 바라는 세상의 요구에 부응하는 '사이보그'나 '인공지능 로봇'의 형태와 닮아야만 가능하다는 뜻인 듯하다. 지금 이 시대의 현대 여성들에게 요구되어지는 다산, 사회적 능력, 부드러운 가정적, 사회적 성역할을 강요받는 여성의 내면과 외면의 투쟁적인 모습을 작가가 패러디 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스, 로마신화 속 여신 아테나와 남신 아레스라는 전쟁의 신은 둘 다 제우스신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나, 아테나 여신은 전쟁을 일으키기보다 중재하고 평화롭게 전쟁을 마무리하는 일을 했다. 그러나 전쟁의 남신인 아레스는 호전적인 전쟁의 신이었고 늘 세상과 신들 사이에서 말썽을 일으켰다. 전쟁과 싸움을 좋아하고 중무장하고 트로이의 전쟁에 뛰어들어 살인을 일삼다 아테나 여신에게 패하고 부상당해 쫓겨나기도 했다.

현대 여성과 남성의 상황은 전쟁의 여신 아테나와 전쟁의 남신 아레스의 격렬한 전쟁터가 된듯하다. 아테나의 여신이 승리하는 듯 보이나 여성들은 아직 미흡하다 느끼며 결혼도 출산도 거부하며 완전한 남녀평등이 이루어질 때까지 전쟁을 계속할 태세로 아테나의 부드러운 드레스 대신 전쟁의 남신 아레스처럼 중무장을 하고 세상과 싸우고 있다.

그 시대의 사회가 여성에게 욕망하는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는 비너스상의 원형의 첫 번째 모습은 유럽 구석기말(BC 25000 - BC 20000년)에 만들어진 오스트리아 다뉴브강가에서 출토된 높이 11cm의 돌로 만들어진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라 불리는 나체 여신상이다.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는 이와 비슷한 조형물은 신석기시대에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발견된 토우(土偶)나 대리석 우상(偶像)과 더불어 여성을 생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삼아 주술적 욕망을 나타내는데, 풍요로운 유방과 큰 둔부 등으로 인해서 '출산의 비너스'라 불리고 있다.

BC 7세기에서 BC 6세기의 그리스의 비너스상은 정숙한 처녀의 모습으로 표현됐다가, BC 4세기쯤에는 관능적인 알몸으로 표현됐고 차차 아름다운 여성의 이상상(理想像)이 돼 그 후의 다양한 발전을 보인 비너스 나체상의 원형이 됐다.

비너스 관련 예술작품 중에서 조각 작품으로는 밀로의 비너스가 있다. 이 조각 작품은 BC 130 - BC 120년경 높이 202cm의 대리석으로 만든 작품이다. 플라톤적인 이데아를 표현한 가장 완벽한 여성상으로 두상과 상체의 모습은 이성적 모습과 완전한 성품을 더한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허리부분과 둔부는 자연에 순응하는 풍성함으로 잉태의 숭고함을 드러내어 사회적, 도덕적 규범과 지혜, 이성, 아름다움이 합쳐진 진선미가 이상화된 작품이다.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 초기인 1485년 로마 메디치가의 후원으로 피렌체에서 활동하던 보티첼리의 그림 '비너스의 탄생'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여성의 이상적인 몸매의 아름다움과 관능적인 미를 드러내고 있다.

태초부터 계속돼 온 비너스로 대치(代置)해 여성에게 욕망하던 인류의 희망을 거부하듯이, 주술적 다산(多産)의 모습도, 이성적이고 정숙한 밀로의 비너스도, 미와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모습도 아닌 힘겨운 일상과 전투를 벌이는 2020년 현대여성의 모습으로 포항 영일대해수욕장에 중무장한 현대의 비너스가 서있다.

아름다운 비너스가 아닌, 전쟁의 남신 아레스처럼 남성화한 2050년의 미래의 여성상이자 현대 여성의 강해져야만 하는 내면을 형상화한 모습으로 나타난 조각은 스틸스테인레스를 온몸에 두르고 번쩍이며 서있다. 글/이을숙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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