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문화관광해설사

▲ 견훤산성 입구 성문 터.
▲ 산성입구 성벽 전경.
▲ 산성입구 성문지.
▲ 사각형 집수정.
▲ 동남쪽 성벽 위.
▲ 이끼낀 성벽 안쪽 전경.
과거 경상도 상주와 문경에서 괴산, 보은, 청주 등 충청도로 가는 길은 현재 49번 지방도로가 가장 수월했다고 한다. 고속도로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사람과 물류 이동로로 사용된 흔적은 곳곳에 보인다. 견훤산성은 이 도로 길목에 해당하는 요충지 장바위산 정상부에 쌓은 성곽이다. 사실상 이 지점은 신라와 고려를 방어, 공격하기 위한 거점으로 적당하다. 그러나 명확한 기록은 없고 구전으로만 전해진다. 아마 견훤이 가까운 상주 가은 출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견훤은 상주 가은현 사람으로 농부 '아자개'란 인물의 첫째 아들로 나온다. 현 가은읍은 행정구역상 문경시에 속한다. 그러나 신라시대에는 상주에 속한 '현'이었다. 견훤은 신라 군인으로 출정해 서남해안 수비를 맡고 있다가 큰 공을 세워 비장이 된다. 그러나 신라 진성여왕 6년(892) 국정이 문란해지고 도적떼들이 발호하자 무리를 모아 조정에 반기를 든다. 서라벌 서남쪽 고을을 공략하며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던 그는 효공왕 4년(900) 마침내 완산주(현 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운다. 견훤산성은 이 과정에서 한 때 근거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견훤이 이끄는 무리는 이 산성에서 북쪽에서 서라벌로 가는 공납물을 거둬들였다는 구전도 있다. 현재 '견훤산성'과 같은 이름의 산성은 전주와 원주에도 각각 남아 있다. 모두 견훤의 활동시기에 축조된 산성으로 비정된다. 견훤산성은 거의 같은 시기에 쌓은 충북 보은 삼년산성과 축성기술이 비슷하다. 이에 따라 축성시기를 후삼국시대 또는 삼국시대로 추정하며 학설이 둘로 나뉘어져 있다.

견훤산성은 해발 400m 장바위산 9부 능선을 에워싼 테뫼식 석성으로 분류된다. 성벽은 자연석을 사람의 손길로 직육면체로 다듬어 질서정연하게 수직으로 쌓아 올렸다. 치밀하게 쌓은 성벽은 보기만 해도 견고하게 보인다. 천연의 산세와 지형을 반영한 축성 기술은 1천여 년이 지난 지금도 놀라움을 자아낸다. 골짜기 푹 꺼진 구간은 채우고 솟은 암벽은 그 위에 더해 쌓았다. 안팎을 동시에 구축하는 협축법(夾築法)이 활용된 구간도 꽤 길다. 굴곡진 긴 산정을 힘겹게 오르내리며 성돌을 지고 날랐을 선조들의 노고가 느껴진다. 높낮이가 거의 일정하도록 정교하게 쌓은 성벽은 신비감마저 자아낸다. 산성이 구조는 앞뒤가 긴 장방형을 띠고 있다. 그러나 네 모서리에는 휘돌아 감는 곡성의 아름다움을 연출했다. 곡성은 현재 동북과 동남쪽 두 구간이 거의 온전하게 남아 있다. 모서리에는 망대(望臺)흔적도 엿보인다. 동쪽 두 지점 망대는 지금도 형태가 온전하다. 성벽은 둘레가 650m, 높이 7~15m, 너비 4~7m로 조사됐다. 그 가운데 높이 15m 가량 성벽은 쳐다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성안에는 기와, 토기 조각이 다량 출토됐다. 모두가 건물이 있었던 흔적을 확인시켜 준다. 그러나 장기간 방치된 듯 성안에는 큰 바위 옆에 분묘가 조성돼 있다.

답사는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장암1리 속칭 방바위마을을 기점으로 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이 마을은 당진~영덕 간 고속도로 화서 I.C를 나와 화북면 소재지에서 보은 방향으로 1km쯤 가다보면 장암교 왼쪽에 나온다. 이 마을에서 속리산 시어동 계곡 방향으로 약 500m 가면 길가 오른쪽에 견훤산성 입간판이 있다. 이 길을 따라 15~20분가량 올라가면 입구에 닿는다. 그런데 최근에는 입간판 100여 m 못 미쳐 지그재그 산길이 샐 생겼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더 수월하다. 산성 입구까지 거리는 약 700m지만 그다지 힘들지 않다. 산성 입구에는 집 채 만 한 바위가 수문장 역할을 하듯 버티고 서 있다. 바위 앞에는 성벽을 조망할 수 있는 평평한 자연석 암반이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입구 계단을 올라서면 바로 성안이다. 왼쪽은 가파른 산세를 따라 그대로 성벽을 쌓아 둘레길에 계단이 많다. 오른쪽 성벽은 밖에서 보면 직벽 형태지만 안쪽 위는 너비가 5m가량의 평평한 구조다. 성벽위에 올라서면 시원한 조망이 펼쳐진다. 전쟁이 한창이었다면 감시와 방어가 용이한 위치겠지만 지금은 속리산 문장대와 관음봉이 보이는 전망대로서 일품이다. 성벽 위를 따라 걷다가 한 계단 위쪽으로 무너진 성벽을 타고 올라가면 이끼긴 옛 성벽이 키 큰 소나무를 배경으로 온전한 모습을 내보인다. 어찌해서 무너지지 않고 천년을 버텼는지 볼 수 록 신기하다. 산성 둘레 길을 한 바퀴 돌다가 서북쪽 고지대에 이르면 높은 언덕이 나타난다. 아마 감시나 지휘소로 사용된 장대가 있던 위치였을 것이다. 성안에서 가장 높은 이 언덕위에 올라서면 속리산 봉우리들이 점점이 한 눈에 조망된다. 남동쪽으로는 멀리 상주 시가지가 아득하게 보인다. 산성은 1시간이 채 안 돼 모두 돌아 볼 수 있다. 성곽 둘레길 거리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은 덕분이다. 견훤산성은 1984년 지방 기념물 제53호로 지정돼 있다. '상주읍지(尙州邑誌)'에는 '성산산성(城山山城)'이라고 기록돼 있다. 한동안 방치돼 있던 이 산성은 속리산 국립공원안에 포함돼 있다. 오늘날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각 지자체의 관심이 증폭되면서 상주시 또한 견훤산성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우선 그 첫 사업이 국가 사적지 승격 추진이다. 지난해 시는 (사)지역발전연구포럼 주최, (사)한국성곽학회 주관 '통일 신라 시대 상주와 견훤산성' 학술대회도 가졌다. 이런 노력들이 집중된다면 견훤산성이 역사적 가치와 문화유산적 위상을 되찾게 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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