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매화·난초·국화·대나무는 고결한 군자를 상징하는 식물로 사군자라 불립니다. 그들의 고결한 사연 각각이겠자만, 오늘은 사군자 중에서 봄의 난초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난초는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와 고아한 꽃, 청초하고 아름다운 잎 선을 자랑하며 대중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는 식물입니다. 그들이 사군자의 하나가 된 것도 이런 외형적 아름다움과 혹독한 환경에서 더 곱게 피어나는 생태적 특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그 아름답고 특별한 난초과 식물 중에서 가장 이르게 피어나는 봄의 난초가 보춘화입니다. 봄에 피는 난초라 하여 춘란이라 불리기도 하는 그들은 ‘봄을 알리는 꽃’이라는 우리 나라말 이름도 가지고 있는 난초입니다.

3월이면 첫봄의 알림 소리 품고 긴 잠자던 그들이 깨어납니다. 마른 숲 갈색 낙엽 사이로 청초하게 잎을 올리는데, 꽃대도 하얀 막질에 싸여 함께 피어납니다. 그들의 아름다운 잎 선을 어찌 설명할까요. 한 촉에 하나의 꽃을 달고 겨울 추위 남은 봄 숲에 은은한 향기를 퍼뜨립니다.

식물 중에 가장 영리한 식물은 난초가 아닐까. 그 영리함은 혹독한 환경일수록 고결한 품성 굽히지 않음이라, 더 곱고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그들에 얽힌 사연이 아름다워 몇 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을 기다리는 동안 기다림에 대한 마음 다시 알게 되었지요. 한 번에 주지 않는 사랑은 준비하고 또 준비하게 하였고, 그 마음은 깊어지고 깊어졌습니다. 물어물어 갈 수도 있고 멀리 달려 개체 수 많은 남쪽으로 찾아갈 수도 있었지만, 나의 꽃 사랑은 그리하고 싶지는 않았던가 봅니다. 사랑은 올 때가 되어야 오는 것.

기회가 된다면 추위가 다 가지 않은 봄날에 꽃샘추위 이기고 피어나는 모습과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기다렸지요.
그러던 어느 날 꽃 벗님 한 분이 톡톡 노크를 주셨습니다.

그렇게 오랜 기다림이 그들 앞에 닿았습니다. 첫 만남은 한 곁에 부족함을 품고 있어 더 아름다운 것이던가요. 카메라까지 긴장하였던지, 셔터도 잘 눌러지지 않던 그 날. 누가 자동초점으로 설정 바꿔 놓고 간 것인지... 카메라까지 주인 마음 몰라주던 날이었지요.

결국... 이쁜 모습 담아오지를 못하였답니다. 며칠 뒤 다시 갔지만, 이번에는 카메라 배터리를 두고 갔었네요. 그렇게 그해 봄은 가버렸습니다.

그날 동행했던 벗이 돌아오는 차 안에서 뜬금없이 이렇게 말합니다.
'난 감동이었어. 최근 몇 년간 그런 모습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네가 고개 숙이고 사진 담는 동안 그분이 계속 지키고 계시더라. 마치 아버지가 딸을 지키듯이... '

뒤늦게 가슴 먹먹해지는 고마움. 감사한 마음 꼭 돌려드리리라.

2020년 3월 11일 보춘화 다시 만나고 오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