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는 우리 지방과 관련이 많은 새이다. 까마귀의 한자는 오(烏)자를 쓰는데, 포항시의 오천읍(烏川邑)은 옛날 고구려의 유민들이 세력을 잡은 근오지국(근기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신라 8대왕 때인 157년 아달라왕에게 복속되기 전까지 세발가진 까마귀인 태양 속의 삼족오를 토템으로 숭배하는 고구려의 영향 아래 있었다.

그래서 나라 이름도 근오지국이라 칭했고 연오랑과 세오녀라는 태양과 달에게 제사지내는 일월신관(日月神官)들이 존재했다. 여기서 나오는 오자(烏)는 모두 까마귀라는 뜻을 가진 한자어다. 연오랑과 세오녀는 신라에 근오지국이 복속된 후 일본으로 건너갔다. 삼국유사에 자세히 실려 있는 이 신화는 근오지국이 신라의 지배를 받게 됨으로서 일월신의 제사를 주관했던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으로 피신하고 고구려의 삼족오와 태양신화가 일본으로 전파된 것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연오랑과 세오녀는 태양과 달에 제사지내는 제사장이었고, 그들이 일본으로 간 후 해와 달이 없어지자 놀란 아달라왕이 일본으로 사신을 보냈고, 사신이 가져온 세오녀가 짠 비단을 귀비고에 두고 일년에 한번씩 신라를 지나서 고려, 조선대까지 제사를 지냈다. 일월지는 현재 포항 해병대 사단 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일제 감정기 때 사당이 부서지고 제사도 끊어졌다가 최근 포항도구에 다시 일월사당을 짓고 일월제를 지내고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자주 보이는 태양 속에 사는 세발달린 까마귀 삼족오(三足烏)는 태양을 상징하는 원형 안에 삼족오를 그린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항상 둥근 달(月)안에 두꺼비를 그린 달의 모양이 함께 천상에 좌우 대칭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고대 고구려의 신앙인 태양숭배신앙과 새숭배신앙이 합쳐져서 생긴 것이다. 달 속의 두꺼비는 알을 많이 낳아 새끼를 많이 치므로 다산을 기원한 것이다.

고구려의 삼족오와 태양숭배신앙은 경북북부지역을 거쳐 도구와 오천이 종착지가 되었다. 포항시 옛 지명에 연일, 영일은 태양을 맞이한다는 이름이고 오천은 까마귀 오자가 들어있어서 삼족오와 태양숭배와 관련이 있고, 도구는 해가 돋는다의 뜻을 가진 지명이며 오천읍 마을이름에도 태양의 빛이 비친다는 뜻의 광명리, 일광리, 일월동 등 태양과 연관된 이름이 많이 있다.

오천지역이 고구려의 세력권에 들어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유적은 흥해읍 신광 쪽에 있는 고분이다. 이 고분은 고구려인들의 무덤과 유사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만나는 까마귀에 신령스러운 의미를 부여한 세 개의 발을 가진 태양속의 삼족오를 숭배하기 시작한 것은 태양을 태우고 하루를 운행하는 것이 까마귀라는 새토템신앙이 태양숭배신앙과 합해졌기 때문이다.

태양숭배신앙과 알을 낳는 새에 관한 새토템신앙이 주몽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난생설화를 낳았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광개토왕릉비', '위서(魏書)' 고구려전에 전하는데 물의 신 하백의 딸 유화가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와 야합하여 햇빛을 쪼인 후 임신해 알을 낳아 임야에 버렸으나 짐승들이 보호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집으로 가져오니 알에서 주몽이 탄생했다고 나온다. 여기서 나오는 난생신화는 신라의 박혁거세와 석탈해의 난생신화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사람이 알을 낳아 그 속에서 영웅이 태어났다는 새와 영웅을 연결한 새토템신앙은 동북아시아 지방과 세계각지에 공통적으로 퍼져 있었다. 하늘을 나는 새는 신의 중개자나 화신으로, 인간의 영혼을 실어 나르고 생사(生死)나 길흉화복을 좌우하는 존재로 여겼으며, 새의 울음소리는 신이나 영(靈)의 울음소리로 여겨졌다.

근대를 지나 현대에 이르러 인류의 이성과 지혜가 발달하고 자연현상에 대해서 과학적 사고를 하면서 인류는 자연을 과학으로 지배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자연 앞에 좌절하기도 한다. 그래서 생로병사의 순리와 자연재해 앞에서 아직도 나약한 인간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형상을 하고 인간의 이성과 능력, 자연의 섭리를 뛰어넘은 초월적인 신을 섬기며 살아가고 있다.

태양숭배신앙이나 새토템신앙은 동북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각지에 존재하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으나 그 전통은 아직도 해맞이라는 형태나 고대부터 내려오는 새 점을 친다거나하는 외에 여러 형태로 남아있다.

옛 일월(日月)신을 모셨던 제사장 연오랑과 세오녀가 살던 근오지국이 있었던 오천과 가까운 포항 호미곶에는 매년 1월 1일이 되면 해맞이를 하며 태양에게 일년 동안의 행운을 비는 기복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리고 삼족오의 자리는 내어줬지만 아직도 까마귀는 죽음을 알리는 불길한 새로 민간에 알려져 있고, 사람들에게 나쁜 일을 예고하는 신령스러운 새로 인식되고 있다. 글/이을숙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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