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주 수필가

 아이가 혼자 건널목을 건너고 있다. 막 바뀐 신호에도 사방을 경계하며 잰 걸음이다. 이팝나무가 꽃을 뿌리고 명지바람이 거들어 봄을 입는 건널목. 얼룩말 무늬 같은 건널목의 빗금을 세고 가는지 굳은 표정이다. 다소 커 보이는 교복 속에 감춰진 왜소한 체형에 짊어진 책가방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흔들리는 두 손의 리듬이 크다.
아이를 이 건널목에서 자주 보게 된 것은 육 계월 전이다. 아침 운동가는 시간이 공교롭게도 아이들 등교 시간과 맞물리면서다. 그저 스쳐가는 길 위의 아이를 내 시야가 붙든 건 표정 때문이었다. 충족된 것 같지만 늘 허전함으로 굳은 표정. 많은 것들을 가진 대신 정말 중요한 몇 가지를 놓쳐버린 표정. 너무 많은 주장들 속을 헤엄치느라 정작 잃어버린 침묵. 아이의 표정에는 늘 그런 것들을 대신해주는 듯 보여 안타까움을 생목으로 올렸다.
섬 안이 끌어안고 있는 것은 비단 숨탄것들만은 아니었다. 옹기종기 넓은 뜰에 모여 앉아 모이 쪼는 새떼 같은 마을도 있었다. 물줄기를 싣고 내달리는 도랑과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신작로의 중심에는 하늘만 쳐다보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시오리, 학교 가는 시간이면 아이들은 자연 반응하듯 한 길 위에서 만났다. 몇 갈래 넓은 길을 두고 굳이 좁은 논두렁길에 서는 것은 그 집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이집 저집, 시루의 콩나물처럼 퉁퉁 분 껍질을 벗고 나온 듯한 아이들은 좁은 논두렁길을 일렬로 서 걸었다. 저 홀로 굳은 표정으로 가는 아이는 없었다. 조금 앞서가는 아이도, 뒤늦게 뛰어가는 아이도 결국 만나서 가는 즐거운 등굣길의 행렬이었다. 고개를 내미는 풀꽃, 들꽃과 눈을 맞추고 향긋한 봄 내음에 콧구멍까지 벙그는 여유로운 길이었다.
한참을 걸어 콘크리트 막대기 두 개를 걸쳐놓은 도랑의 다리를 조심스럽게 건너면 희야네 마을이 나왔다. 섬 안 뜰, 한 귀퉁이에 납작 엎드린 듯한 희야네 마을은 봄이면 집집에 생강나무, 귀룽나무에 물오르는 소리가 보일러 돌아가듯 들렸다. 겨우내 눈과 얼음의 흰색에 진저리를 치던 아이들도 여기저기 뽕뽕 터져 비치는 분홍과 노란색에 게슴츠레한 눈길을 연신 던지며 갔다.
희야와 향이가 합류하면 줄은 좀 더 늘어지고 우리들의 발걸음에도 탄력이 붙었다. 삼삼오오 재잘거리거나 장난을 치며 저마다 새 학기의 불끈한 힘에 헤실바실 입도 벙글었다. 우리들이 행진하듯 걸었던 그 길은 먼지 폴폴 날리는 길이지만 담백하고 깨끗한 길이었다.
폴짝 뛰어넘을 수 있는 도랑 두 개를 더 건너면 욱이네가 사는 제법 큰 마을이 나왔다. 그 곳에도 땅속 눈석임물, 얼음석임물이 뿌리에서 가지로 물관을 타고 올라 매화나무, 산수유나무의 꽃눈이 벙글고 잎눈 터지는 소리로 요란했다. 우리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그새 한 바탕 분탕질한 모습으로 행렬에 스미듯 끼어들었다. 겨우내 언 땅에 납작 엎드린 냉이 위로 작은 발자국들이 쿡쿡 박히던 해맑고 영롱한 빛깔의 길이었다. 마치 털갈이 하고 나온 듯한 아이들이 꽃과 나무와 함께 병정놀이 하듯 걸었던 정다운 길이었다.
팽이 돌 듯, 숙이와 석이네 마을을 거치면 저만치 학교가 보이는 길목에 쉬어가고, 오는 집 하나가 나타났다. 오도카니 마을에서 한 발 물러서 있는 듯한 범이네 집이었다. 벌써 대문 앞에 목발을 짚은 범이와 할머니가 나와 있었다. 우리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달려가 범이의 책가방부터 챙겨 들었다. 시오리 길을 걸어오면서 느슨해진 옷매무새며 헝클어진 머리를 일일이 다독이고 쓰다듬어 주는 할머니의 손길에도 우리들은 익숙했다.
그 집 앞의 봄은 함께 해서 따뜻했다. 벌이 오고 나비도 왔다. 멍멍이와 야옹이도 와 우리들과 한 덩어리가 되었다.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범이는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고 목발에 의지해 걷는 아이였다. 살포시 들어가는 볼우물에 둥글둥글한 심성과 순수한 빛이 영롱한 아이였다. 봄이면 나지막한 울타리에 가지 무성한 매화나무 곁에서 범이와 햇살 같은 아이들이 함께 뒹굴던 그 집 앞. 허전했던 겨울을 충족했다. 많은 것을 가지지 못해도 함께 하는 이들이 많아 찬란했던 봄. 내 것이라 주장하는 이가 많지 않아 침묵이 필요 없는 봄을 우리들은 그렇게 맞아 한 뼘 더 자랐다.
질겅질겅한 그리움 속의 봄이었다. 씹으면 씹을수록 곱씹히는 추억어린 유년의 봄이었다. 터질 듯 환하게 피었다 꺼지는 알싸한 슬픔인들 왜 없었겠나마는 그래도 노란 꽃가루보다 더 향기 나는 부드럽고 달콤한 봄이었다.
그런 봄을 마스크 속에 가두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서는 요즈음이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거리를 둔 탓에 저만치 혼자다. 아군인지 적군인지 구분 하느라 모두가 경계의 눈빛이다. 건널목의 아이처럼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지식의 강을 헤엄치느라 계절의 감각마저 흔들리고 있다. 너무 많은 것을 가진 탓도 있고, 나에게 주어진 환경을 내 의지에 맞게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잃어버린 탓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봄, 우리는 용기를 가지고 삶이라는 양분을 함께 나누고 배려하는 마음의 여백을 가꾸어야 한다. 마스크 속에서도 마음엔 환한 등불이 켜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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