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옥연 수필가

오랜 것들과 이별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뭔가를 버리는 것에는 손이 떨린다. 나의 습성 중에 하나다. 더구나 책을 버리는 것에는 더더욱 인색하다. 그래서 나의 1년 계획에는 책 정리시간이 들어있다. 모순적인 말이긴 하지만 반 강제성을 뛴 자발적 행동이다. 그래야만 책이 쌓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한해 두어 차례 봄가을로 나눠서 정리를 한다.

한 권 한 권씩 꿈을 가지고 사 모은 것들이 짐이 되는 날이 늘어갔다. 다시 책 정리를 한다. 간서치는 못 되어도 흉내라도 내보려고 방 가득 책을 모았다. 결혼 전에는 박봉의 절반을 책을 사 모으는데 쓰기도 했다. 벽면 가득한 책장을 보고 있으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전해지는 기쁨이나 희열이 나의 뇌를 자극했다. 나름 나의 욕심은 소박했다. 밤 한 끼를 굶어도 책 한 권을 나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라 여겼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변하지 않았다. 여러 번의 이사를 다녔다. 매번 집을 옮길 때마다 가장 먼저 챙겼던 것도 책이다. 남편은 책만 싸고 앉아있는 나를 보면 늘 핀잔을 주기도 했다. 이삿짐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단연코 책이었다. 더구나 염치없이 떡하니 방 하나를 차지하고 언젠가 부터는 짐이 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곳곳에 있다. 책벌레다.

아무리 오래된 책을 버리고 신경을 써도 시간이 지나면서 책에는 벌레가 생긴다. 종이 재질도 좋지 않을 뿐더러 제작 과정이나 보관 상태에 따라 책이 누렇게 바래기도 한다. 더 오래 된 책들은 종이가 삭기도 한다. 그런 책들 중에는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벌레가 기어 다닌다. 장기 외출을 한 때는 벌레 소독제를 뿌리고 가기도 한다. 책을 오래도록 모으기 시작하면서 생긴 단점이다.

그것들이 보여 지는 허세의 결과물인지 깨닫지 못했다. 문득 어느 날 책이 짐이 된다고 여기면서부터 오래전 나의 독서 모습들도 부끄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독서를 토해서 그 책의 영향으로 나의 변화를 깨닫는 것도 좋았지만 얼마나 많은 양의 책을 읽었는가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는 나의 책 소장 내역이 중요해지고 있었다. 그것이 자랑거리라 여겼다. 참 못났다. 제대로 된 독서를 했던 이덕무도 간서치라 불렀다지 않는가.

한기봉 선생이 쓴 '치삼'고 문화에 보면 조선시대에도 반 강제 독서휴거가 있어서. 사가가 있어서 3년 정도씩 집에서 책을 읽는 기간을 두었단다. 그래서 생긴 독서당도 있었다. 더러는 반딧불로도 책을 읽었다고 하는데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싶다.

되돌아보면 간서치는 아니라도 한 권의 책도 제대로 읽은 것이 없다. 소장하는 책만 늘어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싶다. 책이 쌓이면 그에 합당한 가치가 생겨야 되는데 양식은 더 궁핍해졌고 지금까지 수많은 오독을 한 것이다. 책이 가지고 있는 올바른 독서와 책의 효용성을 배제하고서까지 독서를 하는 것이 나은 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수순에 이르렀다.

아무리 책 정리를 한다고 하지만 오래 되고 낡았다고 무조건 버릴 수 없는 책도 있다. 내게도 자주 뽑아드는 책은 있다. 그런 책은 가성비가 있다고 봐야한다. 하루에 출판되는 책이 수없이 많다. 이름 없는 무명작가에서부터 각종 동인지는 얼마나 많은가 결국 만들어지는 것과 동시에 쓰레기가 되는 샘이다.

그 수많은 종류에서 좋은 책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 유명 작가의 이름으로 타 장르의 책을 가볍게 써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도 유명세를 타기도 한다. 물론 전문 장르 외 책도 좋은 책은 많다. 그러나 유명한 작가라고 해서 모든 장르의 글이 좋을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많은 독자층은 내용보다 작가의 인지도만 믿고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경우는 더러 실망하게 된다. 그렇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은 미리 읽어보고 책을 사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적어도 책 세 수레는 쯤은 읽어야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있다는데 책의 홍수 속에서 좋은 책 골라 읽기란 어디 쉬운 일인가, 세 수레는커녕 한 수레도 제대로 읽지 못했으니 주구장창 책만 쌓아두면 뭐하겠는가 싶다. 빛 좋은 개살구나 다름없다.

오늘부터 읽는 것에 집중해야겠다. 책만 쌓아두는 부끄러운 짓은 그만 둬야겠다. 한 권을 읽어도 제대로 읽어야겠다. 유명세가 없는 지방의 무명작가의 책이라도 괜찮다. 그렇게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조금씩 변하리라. 간서치는 못 되어도 적어도 오독은 하지 말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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