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익 천곡중 교사

조선 시대 세도정치의 폐해는 아주 심했다. 지방에서는 탐관오리의 수탈에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야반도주에 유랑민이 속출했고 학정에 저항하는 민란까지 발생했다. 그런 가운데 민간에서는 구태의연한 사회 현실을 풍자하고 조롱하는 이야기들이 퍼져나갔다. 평양의 김선달, 서울의 정수동, 영일의 정만서, 영덕의 방학중 등이 그런 만담의 주인공이었다. 그중에 김선달은 특히 기발한 착상과 허를 찌르는 행동으로 상대를 농락함으로써 당대 최고의 풍류가였다. 김선달 설화는 개인의 기발한 착상으로 금전적 이득을 취해 일시적인 즐거움을 얻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해학적인 민담이다.

김선달은 어느 날 한양에서 욕심 많은 부자 상인이 온다는 정보를 알고 실로 기상천외한 사기극을 연출한다. 그는 대동강에서 물을 길어가는 평양의 물장수들에게 미리 엽전 두 냥을 나누어 준 다음 물을 퍼갈 때마다 한 냥을 자신에게 돌려달라고 부탁한다. 그런 다음 한양의 부자에게 자신이 물장수에게 물값을 받는 장면을 보여주어 탐욕을 부채질한다. 용의주도한 공작을 펼친 끝에 김선달은 임자 없는 대동강 물을 거금 삼천 냥에 팔아넘겼다. 이튿날 부자 상인은 김선달처럼 강변에 가서 대동강 물값을 거두려다 물장수들에게 몰매를 맞고 쫓겨난다.

물은 무한하게 많아 자유재(Free Goods)다. 존재량이 무한해 특정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원하는 만큼 소비할 수 있는 재화다. 희소성이 없어 이를 적절히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한 필요가 적기 때문에 경제학의 분석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실 세계에서 자유재는 극히 드물며, 공기나 바람 햇살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현실에서 대부분 재화는 경제재다. 통상 재화라 하면 경제재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반해 공기나 태양열과 같이 그 존재량이 무한히 많아 돈이나 노력을 들이지 않고서도 얻을 수 있는 재화를 자유재라고 한다.

봉이 김선달이 팔아먹은 조선 시대의 대동강물은 자유재다. 그 당시에는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는 재화다. 빗물처럼 누구나 돈을 내지 않고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재화다. 이처럼 물 햇빛 공기처럼 자연에서 만나는 것들은 자유재에 속한다. 하지만 현재 환경문제로 물의 오염과 음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이 제한적이라 무한하게 많은 물도 경제재가 됐다. 생수는 돈을 내야만 살 수 있다. 그래서 경제재로 분류된다. 환경의 중요성을 깨달으며 살아가야 하는 시대다.

지구상에는 사람이 쓸 수 있는 물은 전체 물의 2.5%에 불과하다. 빙하를 제외하면 먹을 수 있는 물은 0.26%밖에 안 된다고 한다. 자유재인 물을 경제재로 둔갑시켜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의 해학적인 이야기는 먼 훗날을 생각하고 한 것은 아니다.

자연에서 얻는 자유재는 환경 파괴로 인해 점차 경제재로 바뀌고 있다. 자유재라고 해서 영원히 자유재로 머문다는 보장이 없다. 지구가 사막처럼 변한다면 빗물도 경제재로 바뀔 것이다. 환경이 바뀌면 희소성도 변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지구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하게 있다.

코로나19로 세상이 바뀌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발열 등 증상이 있으면 출근을 하지 말아야 하는 세태가 되었다. 공동체 생활의 기준도 함께함에서 각자로 가야 하는 코로나19 현상이 빚어낸 슬픈 일이다.

아무리 힘들고 지칠지라도 지켜야 할 일은 인간의 본성을 알고 살아가야 한다. 우주 만물의 창조 질서를 알고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 인간이 중심이어야 한다. 봉이 김선달의 설화는 인간의 이기심을 드러낸 이면에 인간의 해학과 웃음을 자아낸다. 세상은 참으로 공평해서 김선달 같은 사람에게만 특별한 재능을 준 것이 아니므로 늘 조심하라는 뜻이다. 봉이 김선달은 실로 조선 후기의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민중들이 가지고 있던 소망과 저항 의식, 웃음, 재치, 풍자 등을 드러낸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코로나19로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다. 생존권을 위협받는 분들이 속출하고 사회안전망이 무너지는 현실이다. 이럴 때 우리는 이 암울한 현실을 비관할 것이 아니라 비온뒤에 땅이 굳어진다(雨後地實)는 사자성어처럼 희망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 궂은 일이 닥쳐도 서로 돕는 마음을 가진다면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다. KF94 마스크 포장지에 키친 타월을 넣어 정상적인 마스크인 것처럼 판매한 일당이 검거됐다는 우울한 기사가 전해진다. 이러지 말고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며 살아가야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의 명언에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는 말을 새기면서 힘든 이 시기 많이 웃는 하루하루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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