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문화관광해설사

▲ 자연암반을 이용한 이중계단 구조 성벽.
▲ 북문 터.
▲ 서쪽 북문 터 앞 성벽.
▲ 서쪽 복원 성벽.
▲ 마현산성 미복원 구간 성벽.
▲ 남쪽 무너진 성벽.

마현산성은 경남 김해시 생림면 봉림리 해발 233m 산 정상부를 두른 테뫼식 산성이다. 경남 밀양~삼랑진~김해를 잇는 수로와 육로상의 교통 요충지에 있다. 북으로 신라와 낙동강을 경계로 대치하던 4국 시대에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다. 금관가야 옛 수도 김해에서 옛 신라 땅으로 통하는 길목을 지켜 수도를 방어하는 관방성이라고 할 수 있다. 주변 삼국시대 산성과 보루 등은 이를 증명한다. 마현산성은 금관가야 초대 김수로왕이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 고종 때 몽고침입 당시에는 왕의 피난처였다고도 한다. 그러나 확실한 입증 자료가 없어 구전에 따라 짐작만 할 뿐이다. 다만 발굴 과정에서 초축 성벽에서 가야 토기가 출토돼 가야시대 존재했던 산성으로 판단된다. 수축한 성벽에서는 고려와 조선시대 토기파편이 출토됐다. 고려시대 개축과 함께 조선 초까지 역할을 했던 것이다. 산성의 규모는 둘레 445m, 성벽 최대 높이 5m로 확인됐다. 높이 솟은 자연 암벽과 비좁은 계곡 등 지형지세를 아주 잘 이용해 쌓았다. 윤곽은 남북으로 긴 누에고치 모양이다. 동·북부는 천연 암벽을 그대로 성벽처럼 활용했다. 남·서부는 주로 암벽 사이로 성벽을 쌓았다. 서쪽은 안쪽으로 휜 계곡 능선을 'ㄴ' 자 형태로 깎아내고 쌓는 내탁식 공법이 엿보인다. 활모양 안쪽에는 이중 층단을 두어 견고함을 더했다. 서쪽 성벽은 높이 3m, 너비 4m에 이른다. 성문은 동·서·북문은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러나 남문은 현재 돌무지만 있다. 바깥 경사가 심해 성문의 존재 여부는 짐작하기 어렵다. 제 모양을 추정할 수 있는 성문은 서문과 북문이다. 모두 홍예가 아닌, 평문(통로부 바닥에 계단을 두고 출입하는 문)으로 확인됐다. 북문은 북서쪽 높이 치솟은 암반에 기대 성벽을 쌓는 구조로 축조됐다. 입구는 가운데가 좁고, 안으로 들어서면 훌쩍 한 단이 높다. 바깥쪽 옆 성벽을 입구 쪽으로 길게 늘이고 비스듬히 쌓아 바깥에서 안쪽 관찰이 어려운 구조다. 성곽에 문을 낸 일반적 축성법과 다르다. 바깥성문에 통로를 더해 안쪽 공간을 거치도록 설계했다. 고대 초기 성곽에서 볼 수 있는 옹성(甕城)의 혀체가 뚜렷하다. 동문 터는 아직 발굴되지 않았다. 이 부근, 그리고 계곡과 서문지 사이에서는 두 곳의 집수정 흔적이 확인됐다. 인근에 청자, 분청사기, 백자 등이 다량 출토돼 부근에 주요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현산성 가는 길은 경남 김해시 구시가지에서 삼랑진으로 가는 58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곧장 가야 한다. 생림면 소재지에서 오른쪽 길로 갈라져 조금가면 오른쪽에 '부산기독교인공원' 팻말과 함께 진입로가 나온다. 공원묘지를 찾으면 산성은 바로 뒤 바위산 중턱에 바라 보인다. 산 중턱 큰 바위를 기점으로 산길을 더듬어 올라가면 등산로가 나오고 바로 북문 터 부근에 이른다. 그러나 이 길은 사람이 다니지 않아 낙엽이 쌓여 있고 가시덤불이 우거져 사실상 찾기가 어렵다. 공원묘지를 한 바퀴 돌아 서쪽 끄트머리에 이르면 산성으로 올라 가는 임도가 따로 나 있다. 매우 가파르지만 10여 분 숨 가쁘게 오르면 금방 서문 터에 닿는다. 산성은 이곳에서 오른쪽, 왼쪽 어디를 돌아도 제자리로 돌아온다. 복구된 성벽 위는 걷기 편하다. 하지만 아직 복구가 덜된 동·남쪽은 무너진 성돌, 자연 암벽과 사투를 벌여야 한다. 산성 정상에 오르면 멀리 생철리와 봉림농공단지, 생림면 소재지 그리고 공원묘지가 눈아래 펼쳐진다. 나무가 적고 숲이 우거지지 않으면 전망은 더욱 좋다. 산성이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감시하기 용이한 자리임이 확연해진다. 산성위에서 바라보면 북동쪽이 해발 703m 무척산이다. 주변에 하늘벽, 가야벽, 탕건바위, 장군봉 등 암벽이 즐비하다. 신어산, 불모산과 함께 김해 3대 명산으로 손꼽힌다. 이 산에는 김수로왕과 부인 허 황후의 전설이 전해진다. 정상 부근에는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연못 천지가 있다. '김해지리지'에 수로왕릉의 수맥을 바로잡기 위해 팠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산정호수다. 김해 시민들에게는 북풍을 막아주고 낙동강 물줄기로 김해평야를 살찌워주는 고마운 산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산 자락에 쌓은 마현산성은 옛 금관가야의 국방정책을 살펴 볼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적지다. 북방의 강국 신라의 낙동강 서안 진출에 맞서 싸워야 했던 약소국 백성들의 절박한 아픔이 읽혀진다. 김해시는 2008년부터 발굴과 함께 산성 복원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공원묘지가 입구를 넓게 차지한 채 가로막은 지 오래다. 주민들은 산성의 존재 여부조차 아는 이가 드물 정도다. 평소에도 산성을 찾는 이들 가운데 입구를 못 찾아 헤매기 일쑤라고 한다. 아직 갈 길이 너무 멀어 보인다. 천년 역사를 간직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적지를 이대로 놔둘 순 없다. 후손들의 역사교육현장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방안이 재차 강구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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