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죽헌 칼럼-허경태 편집위원

색이 누렇게 바래진 묵은 일기장을 뒤적여 아이들에 대한 글을 몇 가지만 적어본다.

‣ 아들에게 자주 전화와 편지를 받는다. 작은 놈의 전화에는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라고는 '아빠'라는 단어뿐이고, 나머지는 신생어나 아니면 저만의 말 일 뿐이다. 아무튼 어떠랴. 말이란 사람의 사상이나 감정을 소리로 나타내는 수단이 아닌가? 큰놈은 내게 자주 편지를 써서 직접 전해주곤 한다. 무엇을 해낸, 이루어낸 듯이 뿌듯한 표정으로…, 하지만 펴보면 알 수 있는 글자라고는 한 자도 없다. 그러면서도 전해줄 때는 항상 아빠에게 전해주는 사랑의 편지라고 한다. 그러면서 읽어보라는 것이다. 읽고 아무데나 놓아두면 늘 호주머니에 넣어주거나 서재의 책상 위에 올려 둔다. 챙겨 보관하라는 것이다.

글자를 몰라서 상형문자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글자를 써 놓고 그래도 아빠에게 마음을 표시해서 전하는 기쁨을 아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주어서 기쁘게 하려는 마음. 이래서 나는 행복한 아빠인 것이다. 늦잠꾸러기 두 놈을 출근시간 전에 물끄러미 바라보면, 오직 나만의 행복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산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오월 하늘처럼 맑은 두 아들놈과 어깨와 가슴이 든든하지 못한 남편을 하늘처럼 믿고 사는 아내. 언제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게 할 수 있을까. 별의 꿈과 이야기 소리 들려 줄 수 있을까.

‣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서 설거지하는 아내의 옆모습이 아름답다. 갓 태어난 아기가 잠을 자면서도 방긋방긋 웃는 그 모습이 한없이 아름답다. 식사시간에 급히 수저를 들면, "아빠, 기도하고 밥 먹어야지." 라고 말하는 네 살 박이 아들놈의 모습이 아름답다.

눈을 돌려 길 건너 아파트 창문을 바라보면 창가에 비치는 아련한 사람의 모습이 아름답다. 아름다운 모습,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보는 시간은 정말 아름다운 시간이다.

이 세상에 아름답고, 경이롭지 않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아름다운 눈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참 아름답다. 스탠드 불빛 아래서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는, 일기를 긁적이는 내 모습도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된다. 창 밖에서 불어오는 오월의 밤바람이 아름답게 느껴지고, 자기 앞의 생을 생각해보는 늦은 밤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 내게 있어 지나간 한 달은 일생에서 가장 긴 달처럼 느껴진다. 어차피 자기 인생은 자신의 몫일 뿐, 그 누구도 그 삶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부모, 나, 아내, 자식 모두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아내와 자식은 나와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요, 분신인 것이다. 부모 또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사랑도 연륜이 쌓이면 끈끈한 애정으로 변한다. 안 보면 보고 싶고, 미쳐버릴 것 같은 그런 화산을 가슴 깊숙이 묻어 두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느끼는 내 삶도 역시 내가 안아야 할 몫이며 역할인 것이다.

잠든 아내와 자식을 한동안 지켜보면서 내가 가꾸어 가야 하는 가정의 행복을 생각해본다. 신새벽에 자식과 아내 보기가 왠지 부끄럽다. 큰 녀석이 간밤에 내게 해주던 말을 떠올린다.

"아빠! 좋은 꿈꾸고 굿나잇." , "그래. 모두 좋은 꿈꾸고 잘 자라."

이제는 대학생이 되어있는 두 아들을 생각하며, 묵은 일기장를 넘기는 내 마음은 부끄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갔다.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진 온전한 인간은 어느 날, 갑자기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 뽑듯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가정과 학교 나아가서는 사회생활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은 부모나 선생님의 사랑 없이는 결코 올바른 아이로 성장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또 아이들은 바로 사랑을 먹고 자라는 어린 나무와도 같은 존재라는 사실과 어른들이 판단하는 세상의 크고 작음을 재는 기준으로만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한동안 학교 내에서 '열린…' 신드롬 바람이 불다가 이제는 다소 조용해졌지만, 자녀를 두고 있는 가정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일 것이다.

평소에 부족한 과목을 보충시켜 주는 선택학습이 전인교육에 효과가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어서 기쁘다. 불법과외가 성행하여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이 날로 가중된다는 언론 보도에 마음이 무겁다. 이제는 학교가 입시를 위한 학원의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 아이를 알고, 이해하며 자상한 마음으로 학생과 부모, 선생님이 함께 공동의 관심사를 나누는 곳이 되어야 한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