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산책-시인 이종암

사월도 가고 오월도 가고. 내일 지나 모레면 오월도 마지막이다. 사월이 오는가 싶더니 사월은 어느새 가버리고, 오월이 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오월도 가버린다. 떠나가는 오월이 아쉬워 독자 여러분들과 김영랑 시인의 시를 읽는다. 봄날이 떠나가서 모란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 슬픔을 노래한「모란이 피기까지는」이라는 시도 좋지만, 오늘은「오월」이라는 시다.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진다/바람은 千이랑 萬이랑/이랑 이랑 햇빛이 갈라지고/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꾀꼬리는 여태 혼자 날아볼 줄 모르나니/암컷이라 쫓길 뿐/수놈이라 쫓을 뿐/황금 빛난 길이 어지럴 뿐/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산봉우리야 오늘밤 너 어디로 가버리련?”(-김영랑, 「오월」전문.)

시인 김영랑(金永郞 1903~1950)의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본명은 윤식(允植)이다. 전남 강진의 지주 집안의 가정에서 한학도 배우고 일본에 유학하여 아오야마[靑山]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그는 1930년 박용철(朴龍喆), 정지용(鄭芝溶) 등과 함께 ‘시문학(詩文學)’ 동인으로 참가하면서 본격적인 시작(詩作) 활동을 전개하였다.

시인 자신의 이름을 김윤식에서 김영랑으로 일부러 고쳐 부르는 데서 김영랑 시의 특장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고 본다. 영랑, 영랑이라고 소리 내어 읽어보면 그 얼마나 밝고 리드미컬한 음감이 솟아나는지 단박에 알 수가 있다. 김영랑의 시가 이랬다. 한국말의 아름다움이 그의 시에서 다채롭게 빚어졌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풀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강물이 흐르네/돋쳐오르는 아침 날빛이 빤질한/은결을 돋우네”(「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향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내 마음 아실 이」),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의 시편에서 확인할 수 있듯 영랑의 시에는 물 흐르듯 영롱한 언어가 아름답게 흐르고 있다.

떠나가는 오월이 아쉬워 나는 영랑의 시「오월」을 다시 읽는다. 연두가 봄볕을 받아먹고 초록으로 건너가는 오월의 여러 풍경이 짧은 시 속에 아름다운 언어의 그림으로 펼쳐져 있다. 먼저 시의 도입부에서 붉은 황톳길의 마을 골목길과 푸른 들길을 선명하게 대비시켜 풍경의 문을 연다. 그리고 넘실대는 바람과 그 바람 따라 이랑 이랑 갈라지는 햇빛을 펼쳐놓고 또 쫓고 쫓기는 꾀꼬리의 사랑을 그려놓고 있다.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라는 데서 보듯 여성적이고 시각적인 이미지로 의인화시킨 보리를 등장시켜 “황금 빛난 길이 어지럴 뿐” 사랑이 샘솟는 오월의 풍경을 더욱 토실하게 한다.

그러나 시의 압권은 마지막 두 행에 있음이다. 신록으로 새롭게 단장하고 또 거기에 아양으로 가득 차 있는 오월의 산봉우리가 오늘밤 바람이 나 어디로 가버리면 어쩌나 걱정하는 데서 김영랑 시인의 심미적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끝없이 흐르는 마음의 강물을 곱고 맑은 언어로 잘도 퍼내던 시인을 앗아 가버린 한국전쟁이 못내 원망스럽다. 그는 6 ·25전쟁 때 미처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은신 중 파편에 맞아 사망하였다고 한다. 미당 서정주 시인도 김영랑 시인을 두고 사람 내면의 무늬의 결을 눈에 보이듯 잘 그려내었다고 극찬을 했다.

지난 사월과 오월에는 수학여행이 아니라 하늘나라로 떠나간 여러 아이들의 ‘바다에서 보내온 마지막 편지’ 때문에 전 국민이 너무도 슬펐고 힘들었다. 유월에는 이 커다란 슬픔이 좀 진정이 되고, 기쁜 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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