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부사장겸 편집국장

지금으로부터 29년 전인 85년도 겨울 어느 날이었다. 서울 광화문옆 계동에 자리한 현대그룹 본사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지인을 만나러 간 길이었다. 그런데 오전 11시쯤이었는데 자리에 없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조금 전 사우나를 하러 갔다고 했다. 근무시간에 웬 사우나? 란 생각과 함께 대기업도 질서가 너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이란 걸 깨달은 걸 얼마 후였다. 맑은 얼굴에 넥타이를 단정하게 매고 돌아와 자리에 앉은 그 지인의 얘기는 놀라운 것이었다. 직원들이 전날밤 과음으로 숙취에 빠진 상태로 멍청하게 자리에 앉아 있는 것보다 사우나가 일의 능률을 더 올린다는 취지로 본사 지하에 사우나시설을 갖추고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취지가 어쩌면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취상태의 직원이 상사의 눈치를 보며 온몸이 가라앉는 피곤한 상태에서 자리를 차고 앉아 마치 열심히 일하는 척 해봐야 무슨 능률이 오르겠는가 말이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 당시만 해도 현대그룹이 복지혜택은 물론이고 능률위주의 직장문화를 조성해놓은 것은 놀라운 것이었다. 최근 날씨가 전 지구적인 기후 온난화 탓인지 갑작스럽게 30도를 거뜬히 넘으며 무더워졌다. 직장마다 한증막 같은 사무실 환경에 직원들도 헉헉대는 정경이 바라만 봐도 애처롭다. 그런데 일반 직장은 마음만 맞으면 에어컨을 켜도 그다지 볼썽사나운 지적은 받지 않는다. 그런데 이맘때마다 주위 눈치로 고생하는 이들은 공무원들이 아닌가 싶다. 안팎이 유리로 차단된 포항시청과 신문사가 지척이다 보니 시청직원들의 애로가 이만저만 아닌 듯 느껴진다. 다름 아니라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에 상하층 고위직 하위직 어느 사무실 할 것 없이 에어컨을 켜지 못하고 있다. 그다지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한편 뒤집어 보면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무더우면 그 무더위를 식혀야 체온이 안정돼 오히려 일의 능률이 오를 텐데 그저 참고만 있으라고 하는 건 아무래도 어불성설이다. 한 간부 직원은 “에어컨을 켜놓으면 언론에서 또 뭐라고 할지 겁이 난다”는 표현으로 모든 상황을 대신했다. 에너지 절약을 위한 절전은 그 중심 이유에서 조금도 비켜나지 않는 명분이 된지 오래다. 과거 언론에서도 이맘때마다 “시민 혈세로 급여를 챙기는 공무원들이 뭘 잘한다고 벌써 에어컨을 빵빵 터느냐”는 힐난과 질책이 많았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식구조는 지금부터라도 달라져야 한다. 아낄 건 아끼고 쓸 건 써야 한다는 말이 있다. 체력이 달릴 정도의 무더위에는 잠시라도 에어컨을 켜서 체온을 낮추고 건강을 지켜 일의 능률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몸이 지칠 정도로 고온의 무더위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면 일단 에어컨을 켜서 사람을 살리고 볼일이다. 바라건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명분 약한 절전대책과 바깥 눈치보다는 ‘더우면 켜고 참을 만하면 다시 끄는’ 유효적절한 대책으로 직원들이 ‘생고생’ 하는 일이 없도록 했으면 한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