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시인 이종암

존경하는 선배 시인 한 분께 전화를 했다. 국립경주박물관에 놀러 가자구. 지난 3월 18일부터 6월 22일까지 이어지는 ‘天馬, 다시 날다’라는 특별전시를 오래 전부터 보고 싶어서였다. 천마총에서 발굴된 우리 민족의 찬란한 문화유산인 신라의 금관과 자작나무 껍질에 천마도가 새겨져 있는 말 다래가 우리의 주된 관심사였다.

신라 천년의 수도 서라벌 경주가 내가 사는 도시의 이웃에 있는 것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주에는 살아 있는 야외 박물관이라고 하는 남산과 도시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는 왕릉, 절과 폐사지, 양동마을, 옥산서원 등 숱한 문화유적지가 있다. 오늘 독자 여러분과 함께 읽어볼 시는 안강의 옥산서원 뜰에 있는 향나무를 노래한 김선굉 시인의 「우두커니나무」라는 작품이다.

“일주문 두리기둥처럼 거침없이 위로 솟구친 향나무 한 그루./이종문 시인이 그대는 왜 여기 우두커니 서 있는가 물으니,/내가 왜 여기 우두커니 서 있는지 그대가 궁금해 하라고/여기 우두커니 서 있다고 대답한 바로 그 나무다./괜히 자옥산 기슭 옥산서원 뜰에 우두커니 서서/이종문을 궁금하게 한 멋대가리 있는 향나무에게 다가서서,/거친 살결을 짚으며 오늘은 내가 묻는다./그대, 이 추운 겨울날 여기 우두커니 서서 무얼 하시는가 했더니,/그냥 심심해서 하늘에 대고 글씨를 쓰고 있다며,/이렇게 한 획 그어올리는 데 한 사백년쯤 걸렸다며,/지금도 그어올리는 중이니 말 같은 거 걸지 말라는 것이었다./그대가 쓰고 있는 글자 대체 무슨 자냐고 했더니/안 그래도 추운데 이종문보다 더 귀찮은 놈이 왔다며,/뚫을 곤자(ㅣ)도 모르는 놈이 시인이랍시고 돌아다니느냐며.”(-김선굉, 「우두커니나무」전문.)

대구 시단에 50-60대 시인들의 모임인 ‘시오리’가 있다. 여러 시인들의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이 작은 문학 단체에 찐빵의 앙꼬 같은 존재가 바로 김선굉 시인이다. 그는 고스톱도 잘 치고 우스갯소리도 참 잘한다. 그래서 주변 시인들의 삶과 시에 김선굉 시인이 종종 등장한다. 중등학교 문학 선생이었던 그가 정년을 했으니 이제 주위 친한 문인들의 삶과 작품에 더 깊숙이 자주 찾아갈 것 같다. “아우야, 니가 만약 효자가 될라 카머/너거무이 볼 때마다 다짜고짜 안아뿌라/그라고 젖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 된다/너거무이 기겁하며 화를 벌컥 내실끼다/다 큰 기 와이카노, 미쳤나, 카실끼다/그래도 확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 된다”라는 이종문 시인의 시조 「효자가 될라 카머 -김선굉 시인의 말」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김선굉 시인의 시들도 시인의 성정을 닮아 무척 재미있다. 이 시도 그렇지 않은가. 세상에 ‘우두커니나무’가 어디 있는가? 그러나 김선굉 시인이 그냥 있다고 하면 있는 것이다. 경주 안강의 옥산서원 마당에 서 있는 키가 큰 향나무는 이제 그 이름이 ‘우두커니 나무’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 나무는 “멋대가리 있는 향나무”이다. 한문학자이자 시조 시인 이종문을 무척 궁금하게 한 나무이고, 또 김선굉을 두고 “뚫을 곤자(ㅣ)도 모르는 놈이 시인이랍시고 돌아다니느냐며.” 따끔하게 훈계를 하는 그런 멋진 나무다. 서예 공부를 시작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아 붓글씨가 서툰 이종암 시인이 조만간 그를 찾아가 또 한 수 가르침을 배울 것 같다. 회재 이언적 선생과 친구이기도 했을 그는 이제 많이 바쁘고 귀찮게 되었다. 지금도 그는 올곧은 “뚫을 곤자(ㅣ)” 쓰기를 멈추지 않고 있겠지. 그 글쓰기는 언제 다 완성될까? 한갓 사물인 나무와 소통(疏通)하는 시인도, 그 시인의 가슴속에 자리한 ‘우두커니나무’도 참 멋대가리가 있는 존재이긴 마찬가지다.

유한자인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은 멋대가리 있는 사람과 멋대가리 있는 자연, 멋대가리 있는 문화 예술과 소통하면서 살아갈 일이다. 그리하여 내 삶이 만약 누군가의 삶의 성장에 작은 불빛이라도 된다면 더더욱 감사한 일이구. 새로 당선된 이들의 선정(善政)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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