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숙 작가

▲ 서가숙 작가
“만약에 위험한 동물을 만나면 집이 있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물론. 우리 때문에 우리 식구와 이웃들이 위험해지면 안 되니까. 그 정도는 상식이지. 귀가 아프도록 들었으니까.”
“좋아. 그런데 집으로 가는 길은 잊지 않았겠지?”
“표시해 두었어. 길을 잃어버릴까봐 큰 나무의 나뭇잎을 반씩만 뜯어 놨어. 확실하게 나무에 오줌을 묻혀 놓기도 했고.”
“잘했어. 나 역시 만약을 위해 나무는 나무 껍질을 벗겨두고, 바위가 보이면 풀을 뜯어서 올려놓았지. 돌아가는 길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두 토끼는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가만, 우리 너무 멀리까지 온 것 같아. 여기에 물이 많은 것을 보니 분명 강일거야. 강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있어.”
“강이 아니라 호수야. 언젠가 할아버지께서 말씀 하셨는데 강은 길고 물소리도 들리지만, 호수는 갇혀있어서 물 내려가는 소리가 안 들린대.”
“넌 참 똑똑하구나. 내 친구라는 게 자랑스러워.”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 너무 멀리 왔어.”
“그럴까? 다음에 또 오자. 오늘 일은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좋아, 만약에 우리 둘 중 하나가 위험에 빠지면 꼭 구해주기 하자.”
“우린 특별한 비밀을 가졌으니까 변하지 말자. 약속!”
어린 두 수토끼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깡충 깡충 왔던 길을 되돌아갔습니다.

늑대 부부가 호수에 물 마시러 왔다가 어린 두 토끼를 보았습니다.
“이게 웬일이야? 토끼가 한꺼번에 두 마리나 있다니.”
“그러게요. 아마도 부모 말을 듣지 않는 토끼인 게 분명해요.”
“우리 둘이 한 마리씩 사냥하면 우리 새끼들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데, 지금 사냥할까?”
“잠시만, 어린 토끼들을 잡아봐야 별로 배부르지 않아요.”
“눈에 보이는 먹이를 놓아주자고?”
“뒤따라가야지요. 어린 토끼가 어디로 가겠어요? 보나마나 집에서 몰래 나왔을 테니 분명 집으로 돌아가겠지요. 우린 몰래 뒤따라가서 토끼굴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 해요. 굴 앞에서 기다렸다가 매일 한 마리씩 잡으면 수고스럽게 사냥할 필요도 없고 배가 고파 굶는 날도 없을 거예요.”
늑대 부부는 잠시 의논을 했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나무마다 표시하며 천천히 따라갑시다. 토끼가 안보이면 근처 어딘가에 있을 테니 영역을 좁혀가며 눈치 채지 못하게 조심조심.”
“살다보니 이런 행운도 있네요. 철없이 돌아다니는 새끼를 잘 감시하지 않은 부모 책임이지요.”
“자신의 철없는 행동이, 쓸데없는 호기심과 용기가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모르는 어리석은 어린 토끼들 덕분에, 우리 식구들 호강하게 되었으니 오늘 참 운이 좋은 날이오.”
늑대 부부는 토끼 뒤를 들키지 않게 발자국 소리를 죽이며 따라갔습니다.

“뭔가 이상해.”
어린 수토끼가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뭐가?”
“방금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었어. 잘 들어 봐.”
귀를 쫑긋거리며 최대한 작은 소리를 들으려고 신경을 모았습니다.
“나도 들었어. 뭔가 불길해. 어떡하지?”
“여기서 헤어지자. 같이 있으면 둘 다 위험해.”
“그렇다면 내가 먼저 도망갈게.”
“아니야. 내가 먼저 갈게. 위험할 때 돕자고 했잖아. 약속했으니까 나를 도와줘.”
“특별한 비밀을 가진 친구니까 내가 먼저 가게 해 줘. 우린 친구잖아.”
“목숨 앞에서는 친구도 약속도 필요 없구나. 그래서 약속은 하지 말라고 했나 보다.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그럼 각자 알아서 도망가자.”
두 토끼가 죽을 힘을 다해 깡충깡충 뛰어갔습니다.

늑대 부부는 토끼 뒤를 밟은 것이 들키자
“귀가 크니 발자국 소리를 들었나보군. 하지만 누구든 위기에 몰리면 판단이 흐려지지. 둘 중에 하나는 분명 집으로 갈 거야. 평소 하던 버릇을 쉽게 버리지는 못하니까.”
“각자 한 마리씩 따라갑시다. 자신이 살던 동네로 가면 길이 익숙해져서 더 잘 숨을 테니 포위망을 좁혀 가면 굴이 나올 거예요.”
“잡지 말고 쫓아만 갑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작은 토끼가 아니라 토끼굴이니까.”
“그래요. 토끼들이 지치면 숨겠지요. 나올 때까지 기다려줍시다. 하지만 오랫동안 나오지 않는다면 근처에 굴이 있다는 증거예요.”
늑대 부부는 토끼의 습성을 잘 알기에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토끼는 보이지 않는 적에게 쫓겨 도망 다니느라 지쳤습니다.
두려움과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어른들이 낮에는 위험한 동물이 많으니까 절대 굴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쓸데없는 호기심과 용기를 가진 내 잘못이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보니 익숙해진 풍경이 보였습니다.

“우리 동네야. 내가 살던 우리 동네.”
어린 수토끼는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러나 달려오는 친구 토끼를 보고 겁이 덜컥 났습니다.
“안 돼! 이번만은 우리 둘이 같은 마음이어야 해. 우리 때문에 식구들이 죽을 수는 없어.”
“나도 마찬가지야. 우리 동네와 반대인 저쪽으로 도망가자.”
어린 두 토끼는 동네와 반대 방향인 곳으로 죽을 힘을 다해 도망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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