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골리앗에 이긴 이유는...

서봉대의 정가산책(政街散策)

2014-08-21     대경일보

선거판에서도 다윗이 골리앗에게 이기는 일이 잇따랐다.

#2004년 광주 북구갑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이변이 벌어졌다.
이 지역구 현역 의원이자 동교동계(김대중 전 대통령 정치계보) 2인자로 불렸던 김상현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정치 신인인 강기정 열린우리당 후보에게 압도적인 표차로 졌던 것이다. 김 후보는 33.8%를 얻는 데 그쳐 59.8%를 기록한 강 후보에게 26.0%p나 뒤졌다.
김 후보는 6선 의원이었으며 강 후보는 2000년 총선과 2002년 보선 때 같은 지역구에서 떨어진 후 재도전한 상황이었다. 69세였던 김 후보는 당시 선거에서 낙선한 후 불법정치자금 수수의혹 등에 잇따라 연루되면서 정계를 떠나게 됐다.
40세로 첫 당선됐던 강 의원은 이후 총선에서 내리 당선, 3선 의원으로 활동중이다.
강 의원은 2008년 총선에서도 통합민주당 후보로 출마, 4선 의원출신의 '리틀 DJ(김대중)' 한화갑 후보를 눌렀다. 당시 강 의원은 63.3%를 득표했으며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한 후보는 22.9%에 그쳤다. 당시 한 후보의 나이도 김상현 후보와 같은 69세였다.
한 후보는 이어 2012년 전남 무안·신안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 출마, 35.6%를 얻는 등 선전했으나 초선의 이윤석 통합민주당 의원에게 패했으며 이후 정치일선에서 사실상 물러났다.

이 의원은 2008년 총선에선 48세의 나이로 무소속 출마, DJ 차남이자 이 지역 현역 의원인 무소속 김홍업 후보를 0.7%p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는 이변을 연출했다. 당시 텃밭정당인 통합민주당 측 후보에게도 1.6%p 앞섰다.
이 의원은 국회 등원에 앞서 동교동계 좌장으로 불리는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의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정치권에 들어온 후 전남도의회 3선 의원이자 도의회 의장을 지냈다.
#2000년 총선에선 경북 구미에서 정치 거물이 낙선했다. 5선 의원이던 김윤환(허주·虛舟)민주국민당 후보가 당시 선거에서 32.1% 득표에 그쳐 중앙 정치권에선 신인인 김성조 한나라당 후보에게 9.6%p 차이로 패했던 것이다.

당시 김윤환 후보는 68세였으며 김성조 후보는 42세로 경북도의회에서 초선의원을 지낸 뒤 중소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허주는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공신이 되면서 '킹메이커'로 불렸다. 1997년 대선때도 '비영남후보론'을 내세워 후보교체론에 시달리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끝까지 지켰다.
박정희 대통령 때인 10대 국회 때 유정회 의원으로 시작, 민정당 ·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을 거치면서 대통령비서실장·정무장관, 여당 원내총무·사무총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러나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이회창 총재의 당 중진 물갈이 공천과정에서 떨어진 뒤 탈당, 민주국민당을 창당하며 정치적 재기를 모색했으나 총선 낙선후 암으로 사망했다.
김성조 의원 역시 2000년 16대 총선때부터 내리 3선, 당 중진으로 정책위의장·국회 기획재정위원장 등을 지냈으나 2012년 총선에서 낙천된 뒤 무소속 출마, 경제관료출신인 정치 신인 심학봉 새누리당 후보에게 패했다.


#지난 7·30 재·보선 때도 이변이 재연됐다. 경기 수원 병(팔달)에서 정치신인인 김용남 새누리당 후보가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눌렀다.
초접전, 혹은 손 후보 우세로 예상됐던 당시 선거에서 김 후보는 52.8%를 득표함으로써 45.0%에 그친 손 후보를 7.8%p나 앞섰던 것이다.

44세인 김 후보는 '수원 토박이'로 수원지검 부장검사를 지내는 등 법조인 출신이었다. 지난 6·4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의 수원시장 후보경선에 나섰다가 떨어진 뒤 이번 선거에 다시 출마, 공천장을 받게 됐다.
손 후보의 경우 14대, 15대 총선에서 연거푸 당선된 뒤 김영삼 정부때 보건복지부 장관을 거쳐 16대 총선과 2002년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잇따라 당선됐으나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 반발해 탈당한 뒤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 당 대표 등을 지내고 유력 대선주자로 꼽혔던 정치 거물이다. 정치권에 들어오기전 재야인사로 활동했던 그는 1993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에 의해 정계 입문하게 됐다.
67세인 손 후보는 낙선 후 기자회견을 통해 "정치에서는 들고 날 때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평소 생각"이라며 "지금은 제가 물러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다. 책임 정치의 자세에서 그렇고 민주당(새정치연합)과 한국 정치의 변화와 혁신이라는 차원에서도 그렇다"고 밝힌 뒤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이들 사례외에도 정치권에선 이같은 이변이 계속돼 왔다. 그런 점에서 '이변 아닌 이변'으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정치권에선 거물이 될수록 정치신인과 맞붙는 걸 피하고 싶어한다고들 한다. 거물의 최대 라이벌은 신인이란 말도 있다.
이변 상황과 관련해선 중진이 될수록 중앙정치에 깊숙이 관여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지역구를 등한시한 데 따른 결과라는 지적이 있다.
이런 지적의 연장선상에서, 선수(選數)를 거듭함에 따라 지역구 내부에 반발세력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인물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앞서 사례에서처럼 60대 후반 중진들의 선거판에서 빚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여야 정당들이 이 연령대를 공천심사의 주요 잣대중 하나로 삼아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듯하다.
7·30 재보선에서도 전국적인 명망가 혹은 거물들이 '지역일꾼론'을 공약했던 정치신인 등에게 잇따라 무너졌다. 지역구 유권자들 입장에선 중앙 정치권에서 중진으로 활동하거나 대선주자임을 내세우는 후보보다는 지역발전을 대변할 수 있는 '일꾼' 의원들이 더 절실했을 수 있다.
이런 걸 '시대 흐름', 혹은 ‘정치적 발전과정’이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이같은 흐름을 읽지 못하는 정치인은 결국 정치판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시대 흐름을 읽고, 떠나야 할 때 떠날 줄 아는 용기있는 정치인도 우리 정치권에선 있어 왔다.
그러면서 정치는 발전해 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