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주인공을 만나다25
위덕대학교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이정희
지난 겨울 방학 때 출장으로 오키나와(沖縄)를 갔다 왔다. 오키나와 방문은 처음이어서 꽤나 설레였다. 오키나와는 내가 가 본 일본 지역 중에서 가장 일본답지 않는 일본이다.
그때 오키나와 관련 소설을 읽었는데, 이 소설만 읽어도 오키나와의 역사를 비롯하여 오키나와의 문화에 대해서도 알 수가 있다.
오늘 만나게 될 소설 속 주인공은『태양의 아이』(하이타니 겐지로, 개마고원, 1996)에 나오는 초등학교 6학년짜리 여자아이 후짱이다.
사실 이 책은 내가 직접 구입해서 읽은 책은 아니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책꽂이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저자가 일본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책에 대한 정보 하나도 없이 읽어버린 책이었다. 아마 조카들이 사서 읽은 책인 것 같다.
책에는 오키나와의 아픈 역사가 그대로 그려져 있다. 오키나와는 14,5세기만 하더라도 중국과 조선에 조공을 하며 교류하던 독립된 왕국(류큐(琉球)왕국)이었다. 그러다가 일본이 무력으로 침략하려 하자, 당시 왕은 싸움을 시작하면 백성들이 너무나도 많은 피해를 볼 것이 명약관화 했으므로, 오키나와 전역에 있는 무기란 무기를 다 수거해서 한 곳에 모아놓고 항복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일본은 남서쪽으로 오키나와까지 영토를 확장한 것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에는 일본 땅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이 펼쳐진 곳으로 3개월간의 전투에서 주민 3분의 1에 해당하는 15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1945년 미국에 점령된 뒤에는 27년간 미군정의 통치를 받았다가 1972년에 일본에 반환되었다.
이러한 파란만장한 역사와 일본 본토인들의 지역적 차별에 의해,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한국 사람이 일본에 대한 감정이 안 좋은 것처럼, 오키나와 출신 사람들은 일본 본토에 대한 감정은 썩 좋지가 않다. 우리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지금도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로부터 독립을 하고 싶어 한다.
소설 『태양의 아이』는 이러한 오키나와 출신 사람들이 본토에 나와서 겪는 애환과 고향 오키나와를 그리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자신은 일본에서 태어났다고 말하는 후짱, 그러나 점점 마음의 고향인 오키나와에 대해서 알아가는 후짱, 태평양 전쟁으로 마음의 병을 얻어 후짱을 구해내야 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아픈 아빠, 그런 아빠를 걱정하는 엄마와 후짱, 오키나와의 비극에 대해 울분을 토하는 청년 기천천, 오키나와라면 진저리를 치는 불량소년 기요시, 전쟁으로 한쪽 팔도 딸도 잃어버린 채로 힘들게 살아가는 로쿠 아저씨 등 다양한 오키나와 출신 사람들이 등장한다.
소설은 후짱네가 경영하는 식당을 중심으로 등장인물들의 희노애락이 펼쳐진다. 식당이름이 ‘데다노후아 오키나와정’인데, 오키나와 언어로 ‘데다노후아’는 ‘태양의 아이’란 뜻이라 한다. 식당을 열 때 후짱이 엄마 뱃속에서 자고 있어서 씩씩하고 밝은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식당이름 ‘오키나와정’ 앞에 ‘태양의 아이’를 붙였다고 한다.
이 식당이 있는 곳은 고베시로, 오키나와 출신사람들이 일본 본토로 나와 정착한 곳이기도 하다.
작가 하이타니 겐지로는 작품 속의 어린 주인공인 후짱처럼 부모가 오키나와 출신이고 본인은 고베 출신이다. 오랜 교사 생활을 하면서 느낀 아이들에 대한 남다른 정이 작품 속에 배어 있고, 자신의 정체성 찾기의 일환이기도 한 오키나와의 역사를 통해 인간애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 언제 어디에서든지 아이들의 생명력으로 사회가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작품 속에 고스란히 그려 넣고 있다.
“백점을 받더라도 너희들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의 고통을 알지 못한 다면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다. 죽은 사람들의 생명을 받아서 너희들이 지금 살고 있는 거다. 죽은 사람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만일 너희들이 그걸 들을 귀가 없다면 죽은 사람들은 그저 개죽음일 뿐이다” 라고 말하는 대목이 가슴을 울린다.
오늘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 땅에 태어났는지를 서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