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서방 '가치외교' 확장 '슈퍼위크'…세심한 중·러 관리 뒤따라야
2023-05-22 연합뉴스
한국이 G7 정상회의 기간에 국제규범을 강조하며 미·일과 밀착하는 외교 노선을 보다 선명히 내세움에 따라 대 중·러 관계는 그만큼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졌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20일 논평에서 G7 공동성명에 대해 "강렬한 불만과 결연한 반대"를 표명했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도 "우리를 상대로 한 선전포고"라고 반발했다. 중국은 특히 G7 정상회의 폐막일인 21일 미국의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에 대한 제재를 발표하는 '맞불'을 놨다. 지난 3월31일 마이크론에 대한 심사 개시를 발표한 지 50여일 만에 '제품에 심각한 보안 문제가 발견됐다'는 이유로 이 회사 제품의 구매를 중단하도록 조처한 것이다. 메모리 분야 세계 3위인 마이크론은 지난해 매출 가운데 중국 본토 매출액이 약 11%에 달하기 때문에 이번 조치로 실적 악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중국이 자국의 거대한 시장을 무기로 미국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당장 한미관계에서 미묘한 도전이 될 수 있다. 지난달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 한국 정부에 '중국이 마이크론의 반도체 판매를 금지해 반도체가 부족해질 경우 한국 반도체 기업이 그 부족분을 채우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한미 양국 정부는 이 보도를 공식 부인하지 않았다. 최근 반도체 수출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한국 입장에선 실제 이런 상황에 부닥치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러 관계도 향후 우리나라의 우크라이나 지원 규모나 내용에 따라 언제든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G7 정상회의가 끝나고 한 기자회견에서 올해 초 미국 영공을 침범한 중국 정찰 풍선을 미국이 격추한 후 냉각된 양국 관계가 곧 해빙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중국을 분리(디커플링)하려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제거(디리스킹)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다변화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중국은 앞서 이달 10~11일 양국의 외교·안보 사령탑 간 회담을 했다. 이번 G7 정상회의에서 미국과 대중 견제 보조를 맞춘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 정상들도 앞서 중국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가졌다. 각국이 치열한 진영싸움 와중에도 중국과의 선별적, 전략적 협력을 통해 국익을 위한 실리적 공간을 넓혀가는 외교를 펼치는 것이다. 우리도 서방 진영과의 가치 외교를 통해 쌓은 기반을 토대로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려는 외교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중·러와의 소통을 위한 다양한 채널을 구축하는 등의 세심한 양국 관계 관리가 뒤따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