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코지 전 佛대통령, '판사 매수' 유죄 확정에 최고 훈장 박탈

대법원 형 확정 6개월 만에 관보 통해 박탈 1945년 '나치 부역' 페탱 이후 두 번째 전직 대통령 훈장 박탈

2025-06-15     최서인 기자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판사 매수와 부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이 레지옹 도뇌르(프랑스 최고 훈장) 수훈자 명단에서 공식 제외됐다.

AF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15일(현지시간) 관보를 통해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훈장 박탈을 공표했다. 이번 조치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 규정에 따른 자동 박탈 조항에 따라 이뤄졌다.

전직 프랑스 대통령이 레지옹 도뇌르를 박탈당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 협력했던 비시 프랑스 정권의 수반 필리프 페탱 이후 처음이다.

페탱은 1945년 반역죄로 유죄를 선고받고, 같은 해 훈장을 박탈당한 바 있다.

사르코지는 2014년, 당시 대법원 판사였던 질베르 아지베르에게 모나코 고위직을 제안하며 자신을 둘러싼 정치자금 수사 정보를 요구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른바 '판사 매수 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으로 그는 2021년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2024년 말 프랑스 대법원이 형을 최종 확정했다.

이 판결에 따라 사르코지는 1년간 전자발찌를 착용하는 실형을 포함한 처분을 이행하게 됐다.

그는 이외에도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리비아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또 다른 유죄 판결을 받은 상태다.

두 사건 모두 프랑스 현대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전직 대통령의 형사처벌 사례로 평가된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은 1802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제정한 훈장으로, 프랑스에서 가장 높은 영예로 꼽힌다. 

훈장 규정 제R.96조는 공공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중범죄로 유죄가 확정된 경우 훈장을 자동 박탈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으며, 이번 조치는 해당 조항에 근거한 것이다.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렸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4월 마다가스카르 방문 중 기자들과 만나 “전직 대통령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제도이며, 품위는 지켜져야 한다”고 말하며 훈장 박탈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마크롱 대통령은 사르코지와 정치적 노선은 다르지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시각을 드러낸 셈이다.

그러나 레지옹 도뇌르 수훈자의 유족과 일부 법조계 인사들은 “국가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게 침묵하는 것은 곧 공범이 되는 일”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돼야 하며, 예우라는 이름으로 도덕적 기준이 흔들려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현재 사르코지는 유럽인권재판소(ECHR)에 항소 절차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훈장이 복권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법조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박탈은 법적으로 이미 확정됐고, 정치적·상징적 타격 또한 돌이키기 어렵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