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프랑스, 핵 전략 첫 조율… 트럼프 변수에 유럽 핵우산 키운다

프랑스, 독립 핵전략 첫 조율… 장거리 미사일 공동개발도 착수

2025-07-10     최서인 기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왼쪽)가 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영국과 프랑스가 사상 처음으로 핵무기 전략을 공동으로 조율하기로 합의했다.

미국의 안보 우산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가운데, 유럽이 독자적인 억지력 확보에 나섰다는 평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9일(현지시간) 런던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양국의 핵 억지력을 ‘독립적이면서도 조율 가능한 체계’로 전환하기로 했다.

프랑스가 그동안 고수해온 ‘핵 전략 독립성’ 원칙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긴 셈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영국 의회 연설에서 “우리 양국은 유럽 안보에 대해 특별한 책임을 지니고 있다”며 “지금은 그것을 분명히 밝힐 때”라고 말했다. 

스타머 총리 역시 “우리는 유럽의 안정과 민주주의를 지킬 책무를 공유한다”고 화답했다.

양국은 이번 조율 합의와 함께, 차세대 무기 공동개발을 골자로 한 ‘랭커스터 하우스 2.0 선언’도 추진 중이다. 

2010년 양국이 체결한 기존 협정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으로, 발표 예정인 새 협력안에는 △스톰 섀도(영국)·SCALP-EG(프랑스) 후속 장거리 순항미사일 개발 △AI를 활용한 동시타격 역량 확보 △극초단파 기반 방어무기 개발 △공대공미사일과 드론 요격 기술 고도화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가 단순한 무기개발 수준을 넘어, 유럽의 핵 전략 지형을 바꿀 수 있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로런스 프리드먼 킹스칼리지런던 명예교수는 “프랑스가 누군가와 핵전력을 조율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건 처음”이라며 “매우 중대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조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핵무력 사용 가능성을 언급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나토에서 발을 빼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유럽 안보 환경이 요동치는 시점에 나왔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변덕과 러시아의 위협이 유럽을 결속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은 나토의 핵기획그룹(NPG) 일원으로 미국과 전략을 공유해왔지만, 프랑스는 줄곧 핵 공유를 거부하고 독자적 억지력을 고수해왔다. 

이번 조율 합의는 양국이 이러한 차이를 넘어서 유럽 안보의 주축으로 손잡았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까미유 그랑 유럽외교관계위원회(ECRF) 명예 연구위원은 “양국 핵 정책에 있어 의미 있는 변화”라며 “유럽 안보에 대한 프랑스와 영국의 공약을 보여주는 강력한 메시지”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합의가 향후 독일, 폴란드 등 비핵국에까지 영·프 핵우산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