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에서 대가야시대 전돌가마 최초 확인

2015-10-06     박석규 기자

▲고령군은 고령 송림리 대가야 토기가마유적 학술발굴조사에서 삼국시대 대가야 토기조업이 이루어진 가마군이 확인됐다.

고령군은 고령 송림리 대가야 토기 가마의 보존 정비를 위해 (재)영남문화재연구원(원장 박승규)에 의뢰해 발굴조사 한‘고령 송림리 대가야 토기가마유적 학술발굴조사’에서 삼국시대 대가야 토기조업이 이루어진 가마군이 확인됐다.

유적에서 확인 된 유구는 대가야 토기 가마 3기와 폐기장 3기, 조선시대 토광묘 1기 등 총 7기이며, 유물은 토기류 170점, 금속류 12점 등 총 182점이 출토됐다. 유적에서 조사된 토기 가마는 총 3기로 모두 등고선과 직교되게 축조됐으며, 아궁이는 지형 상 낮은 남쪽에 두었다.

가마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에 가까우며, 가마의 축조 시 굴착이 용이한 기반 층에 조성 돼 있었다. 규모는 3호를 제외하고 길이 520∼560㎝, 너비 120∼160㎝, 잔존깊이는 20∼60㎝ 정도이다.

소성부 내부에 함몰된 벽체편과 천장편에서 식물성 부재가 섞여 있고, 가마의 일부가 지상에 드러나는 반지하식의 구조로 보여 진다. 내부 바닥시설은 연소부와 소성부에 낮은 단이 형성된 유계무단 식 구조로 보여 지며, 3호는 연소부에 타원형 수혈이 확인됐다.

이는 가마 내부에서 소성하는 주력제품의 차이로 보여지는데, 즉 1·2호 가마에서는 塼(전돌)을, 3호 가마에서는 대호(큰 항아리)를 토기와 함께 소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가마의 구조 및 출토유물을 통해 볼 때 삼국시대의 5세기 후엽∼6세기 전엽 사이에 조업이 집중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고령 지산동고분군 등에 공급했던 생산유적 토기 가마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고, 대가야 궁성지 등에서 수습된 전이 실제로 이곳 고령에서 생산되었음을 확인한 첫 번째 사례로 학술적인 가치가 높다.

또한 생산유적이 처음으로 조사됨으로 향후 생산과 유통구조를 밝힐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