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3500억달러 이견에 "美요구 수용땐 금융위기 직면"
"미 이민 단속, 트럼프 지시 아닌 사법 당국 판단일 것 북한, 당분간 핵무기 생산 동결 합의땐 수용하겠다"
이재명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하기에 앞서 로이터·BBC 등 외신과 인터뷰를 갖고, 한미 무역협상과 통화스와프, 북핵 문제, 조지아주 구금 사태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22일(현지시간) 보도된 로이터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은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전액 현금으로 집행할 경우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며, “통화스와프 없이 그렇게 인출하라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경고했다.
이 대통령은 “상업적 타당성을 보장하는 구체적 합의 도출이 핵심 과제이자 가장 큰 장애물”이라며, 실무 협상에서 제시된 미국 측 안들이 실행 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협상이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이 불안정한 상황을 가능한 한 빨리 끝내야 한다”고 답했다.
다만 ‘협상 철회’ 가능성에는 선을 그으며 “혈맹 사이에는 최소한의 이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위비 분담금과 관련해선 “주한미군 2만8500명에 대한 증액 논의에 큰 이견은 없고, 미국은 안보와 무역 협상을 분리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조지아주 이민단속 사태와 관련해선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근로자 300여 명이 구금된 사건을 언급하며 “가혹한 처우로 한국인들이 분노했고, 기업들의 대미 투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 사건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가 아닌, 과도한 법 집행의 결과로 본다”며 미국의 사과와 재발 방지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BBC 인터뷰에서는 “대통령으로서 우리 국민이 겪은 가혹한 처우에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히며,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속담을 인용해 한미 관계가 오히려 강화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 비핵화 문제에 대해선 ‘핵 생산 동결’을 “현실적인 비상조치”로 평가하며,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핵무기 생산을 중단하는 데 합의한다면 이를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궁극 목표만 고집하기보다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일부라도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북미 간 대화와 관련해선 “현재 실질적 대화는 없다는 게 정부 판단”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대북 라디오 방송 중단에 대해선 “실효성이 낮고, 대화 복귀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북·중·러 간 밀착에 대해 “세계가 두 진영으로 나뉘고, 한국은 그 경계선에 있다”고 우려하며 “한미일 협력이 강화될수록 북중러 협력도 심화되는 소용돌이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군사적 긴장에서 벗어날 출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러 군사협력에 대해선 윤석열 전 대통령의 위협 인식에 공감하면서도 “단순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양 진영 모두 문을 완전히 닫을 수는 없고, 우리는 중간 어딘가에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선 “명백히 규탄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국가 간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며 협력과 평화공존을 위한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엔 안보리 개혁에 대해선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번 인터뷰는 유엔총회 참석을 앞둔 지난 1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뤄졌으며, 이 대통령은 22일부터 26일까지 3박 5일간 뉴욕에 머물며 23일 유엔총회 기조연설, 24일에는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안보리 공개토의를 주재할 예정이다.
한편, 이번 방미 일정에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포함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