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침해 상징’ 논란… 태평염전, 문화유산 등록 자진 말소 요청

소금박물관까지 포함해 등록 말소 요청 태평염전 “문화유산으로서 상징성과 정당성 상실”

2025-10-26     이승원 기자
태평염전은 최근 국가유산청에 자신이 보유한 등록문화유산인 태평염전 본체와 석조소금창고의 등록 말소를 신청했다. 사진은 전남 신안군 증도에 위치한 태평염전의 모습. 연합뉴스

국가등록문화유산인 국내 최대 염전 ‘태평염전’이 스스로 문화유산에서 물러나겠다고 나섰다. 70년 넘게 천일염을 생산해온 상징적 공간이었지만, 최근 불거진 강제노동 논란 이후 ‘문화적 상징성’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남 신안군 증도에 위치한 태평염전은 최근 국가유산청에 자신이 보유한 등록문화유산 두 건, 즉 태평염전 본체와 석조소금창고의 등록 말소를 신청했다. 자연재해나 화재로 훼손되지 않은 문화유산이 소유자 스스로 등록 말소를 요청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계기는 미국의 수입 금지 조치였다. 미국 관세국경보호청은 지난 4월, 2021년 드러난 강제노동 사건을 이유로 태평염전산 천일염과 관련 제품의 수입을 전면 차단했다. 

이에 태평염전 측은 조치 철회를 요청하는 청원서를 제출했고, 제3자 기관의 감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다. 애초 올해 안에 감사를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일정이 미뤄지며 내년 상반기로 감사를 추진 중이다.

태평염전 측은 국가유산청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이제는 산업과 지역 생활사의 긍정적 상징이 아니라 인권 침해 산업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공공적 정당성을 상실해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천일염 산업 전체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흔들린 만큼, 문화유산이라는 지위가 오히려 부정적 상징성을 확대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실제 태평염전 관계자는 “문화유산 등록은 상업적 목적이 아닌, 산업·환경·지역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남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밝히며 “그러나 강제노동 논란 이후 내부 조치를 취하고 제도를 개선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적 시선과 낙인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등록 말소는 신안군의 심의와 전남도를 거쳐, 국가유산청이 최종 결정한다. 현행 근현대문화유산법에 따르면 등록문화유산이 멸실되거나 가치 상실 등의 사유가 발생할 경우, 위원회 심의를 거쳐 말소할 수 있다.

한편, 태평염전은 1953년 한국전쟁 직후 피난민 구제와 국내 소금 자급 확대를 목적으로 건립된 국내 최대 단일 염전이다. 전증도와 후증도를 잇는 둑 사이 갯벌을 간척해 조성됐으며, 2007년에는 석조소금창고와 함께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석조소금창고는 현재 소금박물관으로 활용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