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순의 얼굴로 보는 세상]짧게 빛난 봉황 ― 방통(龐統)

이복순 얼굴경영연구소장

2025-11-11     대경일보
방통(龐統, ?~214)은 제갈량과 더불어 와룡(臥龍)과 봉추(鳳雛)라 불린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생애는 제갈량과 달리 짧고도 허망하게 끝났다. 정사에서는 전략가로 높이 평가되지만, 『삼국지연의』에서는 추한 외모 탓에 인정받지 못하다가 뒤늦게 발탁되는 인물로 묘사된다. 이는 첫인상이 얼마나 사람의 평가를 좌우하는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첫 인상과 외모의 장벽
방통은 제갈량, 서서와 교유하며 사마휘·노숙 등과도 인연을 맺었다. 사마휘는 유비에게 “와룡과 봉추 중 하나만 얻어도 천하를 제패할 수 있다”고 극찬했으나, 유비와 첫 만남에서 방통은 추천장을 내보이지 않았다. 그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재능을 외부 증거에 기대지 않고 능력으로만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비는 그의 초라한 외모만 보고 하찮게 여겨 뇌양현 현령에 임명했다.

『연의』는 이 장면을 한층 극적으로 묘사한다. 방통은 현령으로 부임한 뒤 술에만 빠져 지내며 일부러 직무를 소홀히 했다. 격노한 유비가 장비를 보내 꾸짖게 하자, 방통은 단 하루 만에 밀린 업무를 모두 처리하며 놀라운 행정 능력을 보여주었다. 장비조차 혀를 내둘렀고, 유비는 뒤늦게 제갈량과 노숙의 추천장을 보고 자신이 인재를 몰라본 것을 후회했다. 이는 첫인상은 진실을 가리지만, 실력은 반드시 드러난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적벽대전과 연환계 ― 문학적 재현
정사에는 방통의 이름이 보이지 않으나, 『연의』는 그를 적벽대전의 숨은 주역으로 만든다. 조조군은 배멀미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방통은 “배들을 쇠사슬로 묶으라”고 권유했다. 표면적으로는 병사들의 불편을 줄이는 계책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화공이 가해질 때 도망칠 수 없도록 가둬두는 함정이었다. 황개의 거짓 항복과 맞물려 불길이 붙자 쇠사슬에 묶인 수만 척의 전함은 한순간에 불바다가 되었고, 조조군은 대패했다.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지만, 후대는 이 장면을 통해 방통의 지략을 ‘조조를 무너뜨린 계책’으로 각인시켰다. 『마의상법(麻衣相法)』은 “형체는 누추하나 눈빛이 맑은 자는 기책을 품는다(形陋而目精者, 有奇謀也)”고 하였는데, 이는 방통의 외모에 가려진 내면의 지혜를 잘 드러내는 구절이다.

◇유비 휘하에서의 역할과 최후
방통은 결국 유비의 중용을 받아 제갈량과 역할을 분담했다. 제갈량이 형주를 지키는 동안, 방통은 유비를 따라 익주 정벌에 앞장섰다. 그는 전략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위급한 상황에서 결단을 촉구하며 유비의 진군을 이끌었다. 만약 유비 곁에 제갈량과 방통이 동시에 존재했다면, 유비 진영의 전략적 무게감은 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오래가지 못했다. 214년, 유비가 파촉으로 진군할 때 방통은 선발대를 이끌고 샛길로 들어섰다. 그곳이 바로 ‘낙봉파(落鳳坡)’, 곧 ‘봉황이 떨어지는 언덕’이었다. 방통은 자신의 호인 봉추(鳳雛)와 맞닿은 불길한 이름을 떠올리며 위태로움을 감지했으나 이미 늦었다. 매복해 있던 장임의 군사들이 그를 유비로 착각하고 쏜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유비는 눈물을 흘리며 그를 애도했고, 제갈량은 하늘의 별이 떨어지는 징조를 보고 그의 죽음을 예감했다고 한다. 정사에서는 단순히 낙성 전투 중 전사로 기록되지만, 후대는 그를 “짧게 빛난 봉황”으로 기억한다.

◇관상학적 해석과 현대적 교훈
방통의 외모는 『삼국지연의』에서 추하게 묘사되었지만, 이는 단순한 풍자가 아니라 인재의 본질을 외면하는 세속적 편견을 드러내는 장치였다. 『마의상법(麻衣相法)』은 “이마가 낮고 눈빛이 흐린 자는 쓰임받기 어렵다(額低目暗者,難得)”고 하였고, 또 “형체는 누추하나 눈빛이 맑은 자는 기책을 품는다(形陋而目精者,有奇謀也)”라고 하였다. 방통은 전자와 같이 외모 때문에 홀대받았으나, 동시에 후자의 구절처럼 지혜와 책략을 간직한 인물이었다. 결국 그는 짧은 재임 기간에도 실력으로 가치를 증명했으나, 요절로 인해 그 잠재력은 온전히 발휘되지 못했다.

만약 방통이 제갈량과 함께 오래도록 유비 곁에 있었다면, 유비 진영은 내정과 외교의 치밀함에 과감한 전술이 더해져 조조나 손권과 대등하게 맞서는 또 다른 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낙봉파(落鳳坡)’라는 불길한 이름처럼, 봉황은 짧게 날다 추락하였다. 이 비극은 개인의 불운을 넘어, 겉모습 너머에 숨겨진 본질과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오늘날 사회에서도 여전히 첫인상이나 외모가 평가의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방통의 삶은 외형적 조건보다 내면의 역량과 지혜를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