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태 칼럼] 전투기 조종사와 안보
정상태 공학박사·기업경영연구원장
2025-11-12 대경일보
그러나 쌍팔년도 교련수업을 듣던 산업화 세대의 안보관과 요즘 국민의 안보관이 조금은 차이가 있다고 느껴졌다. 어떤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라의 안보만큼은 절대로 양보해서는 안 된다. 며칠 전 서울 방향으로 출장을 가다가 일어난 일이다. ‘삼국유사 군위휴게소’를 들러 급한 용무를 해결하고 가벼운 식사를 마쳤다. 차 한 잔 마시려 편의점에 들렀다가 매우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다. 예전 근무하던 군부대의 비행조종사들이었다. 비행복 상단 가슴에 눈에 익은 부대마크가 부착되어 있어 너무 반가웠다. 웃으며 다가서서 “반갑습니다. 비행하시느라 고생이 많아요. 어느 대대에 근무하세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두 사람의 조종사들이 우물쭈물하며 살짝 당황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는 몇 대대에 근무했는데, 어느 비행대대 소속이세요?”하고 재차 질문을 하였다. 그러자, “미안합니다. 저는 그 쪽 비행단 소속 조종사가 아닙니다. 가슴의 흉장은 교환을 해서 어느 비행단인지 말씀드리기가..” 갑자기 수상한 느낌이 들었다. 비행단을 상징하는 조종사 비행복의 흉장을 맞바꾸어 달고 왔다고? 본디 비행복의 가슴부분에 붙이는 휘장은 주로 해당 비행단이나 부대의 고유 마크로, 조종사가 소속된 부대를 식별하는 중요 표식인데? 그리고 그 옆의 젊은 조종사를 보니까 검은 명찰의 생소한 비행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무척이나 수상하다고 판단했다. 지금처럼 우리의 국산전투기들이 세계시장에서 두각을 내고 있는 시점에서 주요 비행단 근처 고속도로 휴게소를 방문하며 조종복을 입고 그 패치가 자신의 비행단 것이 아닌 것을 바꿔달고 왔다고? 그리고 다른 한 명의 젊은 조종사는 복장이 영 이상한데? 교련과목을 이수한 세대라 그런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며 112에 신고 했다. “제가 조금 민감하게 보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몹시 수상한 군인들이 있어서 신고를 드립니다.” 그러자 잠시 뒤 순찰경찰에게서 상황을 묻는 질문이 왔고, 재차 전화가 와서 “신고가 들어온다고 모두 검문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통보를 드린다 했다.
함께 한 일행이 살짝 고개를 갸우뚱댄다. “신고를 하면 경찰은 신고가 들어와서 그러니 신분증 좀 보여 달라며 검문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우리가 틀린 건가? 뭐 어쨌든 우리는 민주 시민으로서 경찰에 신고하는 의무를 했으니 아무 일도 없으면 좋고, 뭐 그렇지.” 하며 사건을 마무리하려 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자신의 부대나 비행단을 상징하는 명예로운 문양의 휘장을 함부로 바꿔 달며 거리를 활보하며 그 뜻도 모른다는 게 이상했다. 그래서 한 참을 달려 차를 정차한 다음 아예 군부대에 신고했다. 그런데, 이것 또한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먼저 ‘국방부 민원상담센터’로 전화를 했다. 그곳에서 ‘대한민국 육군대표전화’로 연결되고, 다시 원하던 부대 민원실로 연결이 되는데 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 이렇게 해서 신고가 잘 될까? 요즘 신고 시스템이 이렇게 까다롭고 어려운데 누가 신고할까?” 하고 상심할 찰나 전화기 너머에서 각이 반듯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사안의 중대성을 파악하는 듯 매우 진지하고 자세하게 질문을 해왔다. 답변을 하며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아직 우리나라 국방 쪽은 안보와 경계태세가 허물어지지 않았구나.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공군부대 젊은 장병의 목소리가 고맙기까지 했다. 목격시간과 장소 등 자세하고 상세하게 내용을 전달하고 전화를 내려놓으며 “국방에 애를 써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며 전화를 끊었다. 참으로 든든했고, 이 지면을 통해 그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귀가해서 그 날 있었던 복장규정과 관련된 내용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조종사는 자신이 소속된 부대의 마크를 가슴에 달며 파일럿의 자격을 상징한다. 그 자체가 명예인 셈이고, 공식적으로는 엄격한 착용이 요구되며 바꾸어 다는 것은 규정에 어긋난다고 한다. 다만 가끔 비공식적으로 휘장을 교환하는 경우는 있을 수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비행복도 미 공군의 조종사 비행복 K2B를 참고로 만든 국산 전투조종사 비행복이 새로 나왔다하니 오래 전 군 생활을 한 노병으로서는 모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다소 규칙에서 벗어난 것이 보안과 관계되면 신고를 해야 하는 세대로서 점검태세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에서 진 장수는 용서해도 경계에서 실패한 장수는 용서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대통령도 정상회의에서 언급한 통신보안. 우리 국민 모두는 안보에 관심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한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