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겼다, 그런데 누구 덕?”… 론스타 승소 두고 정치권 ‘공로 다툼’
민주당 “정부의 외교 성과”… 한동훈 “내가 추진” 정성호 “실무진이 혼신의 힘”… 정치적 귀속 선 그어 ICSID 전면 취소 극히 이례적… 공로 놓고 해석 갈려
한국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 취소 소송에서 전면 승소하면서, 정치권은 ‘국익 수호의 성과’에는 한목소리를 냈지만, 그 공을 누구에게 돌려야 하느냐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승소를 환영하면서도, 이재명 정부의 외교 성과임을 암시하면서 ‘대한민국의 승리’라는 표현을 앞세우는 방식으로 공로 귀속 논란을 피해 가는 전략을 택했다.
정청래 대표는 “대한민국이 4000억원 배상을 피하게 됐다는 기쁜 소식”이라며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와 더욱 빛나게 된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과 ‘대한민국’을 나란히 언급하며 은근히 정권의 역할을 부각한 대목이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배상금 0원의 기적 같은 결과를 만든 정부 당국에 경의를 표한다”며 “후속 절차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지원 최고위원도 “이런 전면 취소 판정은 매우 드물다”며 “국고를 지켜낸 관계 공무원들의 노고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소송의 장기화와 실무진의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전체적인 흐름은 현 정부의 성과를 자연스럽게 묻히지 않도록 배치한 모습이다.
반면, 해당 소송의 취소 신청을 주도한 인물임을 강조해온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민주당의 반응을 두고 연일 “숟가락 얹기”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는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 시절 추진한 소송을 민주당은 ‘승산 없다’, ‘이자 늘면 네가 책임질 거냐’며 강하게 반대했었다”며 “이제 와서 자화자찬하지 말고 국민께 사과하라”고 적었다.
19일 라디오 인터뷰에서는 수위가 더 높아졌다. 그는 “만약 졌다면 전부 제 책임이라고 했을 사람들이, 이기니까 마치 이재명 정부가 뭐라도 한 것처럼 김민석 총리가 브리핑하더라”며 “약을 팔아도 말이 되게 팔아야지, 국민을 우습게 아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실제 소송 경과를 살펴보면,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중재판정부는 2022년 8월,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2억1650만 달러(약 3173억원)를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이에 정부는 2023년 9월 해당 판정에 대한 취소를 신청했고, 올해 1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구술심리 이후 11월 18일 최종 취소 판정을 받았다.
한 전 대표는 “항소 마지막 변론은 1월 21~23일에 진행됐으며, 이재명 정부 출범 전이었다”며 “논리도, 전략도 윤석열 정부 시절 수립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서구는 주가조작 세력을 엄하게 본다. ‘남의 나라에서 분탕질 치고도 돈 달라는 게 말이 되느냐’는 논리를 반복했는데, 그게 통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러한 공방에 선을 긋고 있다.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국제법무국장을 중심으로 10년 넘게 이어져온 결과다. ‘우리 정부가 잘했다’고 하면 될 일을 정치적 공방으로 몰고 가는 것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강득구 의원도 “보수는 또 프레임 들고나올 것”이라며 “이번만큼은 그 어떤 프레임으로도 덮을 수 없는 이재명 정부의 성과”라고 주장했다.
정부 측에서도 ‘공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따지는 시각에 일정한 거리를 뒀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18일 브리핑에서 “새 정부 출범 전부터 된 거 아니냐는 말씀도 하겠지만, 저는 이게 어느 정부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지난해 내란 이후 대통령과 장관이 모두 부재한 상황에서도 법무부 국제법무국장을 비롯한 담당국 직원들이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밝혔다.
정치적 귀속보다 실무진의 헌신과 행정의 연속성을 강조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여야 모두 “우리 덕분”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정작 핵심 쟁점은 ‘누가 처음 싸움을 시작했는가’보다는 ‘누가 실제로 승기를 가져왔는가’에 쏠려 있다. 한 전 대표는 “소송을 추진한 사람은 나”라고 강조하고 있고, 민주당은 “결과적으로 국익을 지켜낸 정부”라고 맞서고 있다.
ICSID 중재판정이 전면 취소된 사례는 1972년 제도 출범 이후 단 8건에 불과하다. 이번 판정으로 소송은 일단락됐지만, 그 성과를 둘러싼 정치적 해석은 쉽게 정리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