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잊힌 유통단지? 아니다, 대구경제의 첫 관문이다

한규상 대구종합유통단지관리공단 이사장

2025-11-19     대경일보
▲ 한규상 대구종합유통단지관리공단 이사장. 김민규 기자
도시는 겉으로 드러난 풍경보다 보이지 않는 흐름에서 먼저 움직인다. 예전 사람들은 그 흐름을 ‘길’이라고 불렀다. 길이 열리면 시장이 생기고, 시장이 생기면 사람들이 모였다. 조선의 보부상들이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장터를 잇던 이유도, 유럽 항만 도시가 물길을 따라 번영했던 이유도 같다. 도시의 성장은 화려한 건물보다 작은 흐름, 즉 ‘길’에서 시작된다.

대구종합유통단지는 그 ‘길’의 현대적 모습이다. 1995년 문을 연 후 영남권 최대의 도·소매 집적지로 자리 잡았다. 관마다 전문 상권이 촘촘히 얽혀 있고, 새벽이면 점포의 불빛이 켜지며 도시의 하루가 움직였다. 비록 평범한 상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대구 생활경제의 첫 관문이었다. 대구의 ‘길’은 오랫동안 이곳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산업 변화의 속도는 유통단지보다 훨씬 빨랐다. 온라인 플랫폼의 확산을 시작으로 소비 패턴 변화, 경기 침체가 동시에 밀려왔고, 30년 가까운 지구단위계획 규제까지 이어지며 시설 개선과 공간 혁신도 늦어졌다. 예전에는 ‘유통단지부터 가자’는 말이 자연스러웠지만 지금은 그 말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 상인들은 변화를 온몸으로 느꼈고, ‘이대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흐름을 다시 잇기 위한 작은 변화들
유통단지관리공단은 다시 ‘길을 여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입주업체 역량강화 교육을 상·하반기 두 차례 확대하며 변화된 유통환경을 상인들과 함께 읽기 시작했다.
온라인 플랫폼 입점 지원, 상세페이지 제작, SNS 홍보는 전통 유통의 강점을 디지털 경쟁력으로 바꾸기 위한 첫 시도였다. EXCO 국제행사와 연계한 공동관 공동마케팅 행사, 홍보부스·전광판 운영도 상권의 존재감을 되살리기 위한 시도였다. 많은 소상공인들이 참여하고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30년이 다 되어가는 시설정비 또한 중요한 과제였다. 보행환경 정비, 접근성 개선, 방수 공사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업들이지만, 믿고 찾을 수 있는 상권은 이런 기본기 위에서 다시 세워진다. 이러한 개선들은 상인들과 공단 사이의 긴장을 풀고, “다시 해볼 수 있다”는 마음을 만들어내는 밑거름이 되었다.

내년은 이러한 시도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 더 큰 변화로 이어갈 계획이다. 교육은 더 세분화하고, 온라인 판로 지원은 매출과 직접 연결되는 구조로 고도화하며, 뉴미디어 홍보인 대구종합유통단지 대표 블로그는 젊은 소비층 유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거기에 시설 안전 보완도 병행해 기본기를 단단히 다지고 있다.

도시경제는 결국 흐름의 예술이다. 흐름이 열리면 사람과 물건, 정보가 다시 움직인다. 옛사람들은 “통즉불통(通則不痛)”이라 했다. 흐르면 막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구종합유통단지는 지금 그 흐름을 회복하기 위해 조용히 그러나 뚜렷한 변화를 이어가고 있다.

‘길은 스스로 열리지 않는다. 누군가의 손끝에서 다시 이어질 때 비로소 도시가 움직인다’
대구종합유통단지는 지금 그 손끝이 되고자 한다. 그 작은 움직임이 결국 대구경제의 내일을 바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