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손금이야기] 끊어진 생명선

서가숙 작가

2025-11-19     대경일보
살다보면 가끔은 지금의 내 인생이 아닌 다른 인생이 되어 살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은 재미있어 보이고 다른 사람의 삶은 좋아 보여서 그것이 비록 겉모습만 아름다워 보인다 하더라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배우는 왕도 되어보고 부자도 되어보고 거지도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공인 내가 연극배우라고 생각하고 역할에 충실하다보면 인생을 멋지게 살고 싶다는 의욕이 생기게 되고 어쩌면 정말로 행복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오늘 현실에서 우리는 열심히 살아가는 직장인 역할을 맡아 멋진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 연극배우가 되어봅시다.

철학을 나름대로 오래 공부해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가끔씩 튀어나옵니다. 특히 생명선에 변동이 있는데 즉, 분명 끊어진 생명선인데도 멀쩡하게 오래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조금 당황스러워서 “이게 생명선인데 끊어져있어요. 이런 경우 교통사고나 병으로 인해 목숨이 위험하다고 하지요. 여기 보조선이 나와 있으면 수술해서 회복된다는 뜻으로 죽다가 다시 살아나는 경우입니다.”

손금을 보고나서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 대답은, “죽다가 살아난 것 맞아요. 교통사고 나서 죽는 줄 알았거든요.”, “물에 빠져 죽는 줄 알았는데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어요.”, “자살했는데 며칠 만에 병원에서 깨어났어요.” 신기하고 놀라운 이야기를 듣습니다.

요즘은 성공이라는 말이 돈과 관련이 있어서 부자를 연상시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부자들은 다 성공했다고 믿게 됩니다. 내가 생각하는 성공이란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보람을 느끼며 그 일을 계속 하는 것.”

나의 경우, 동화작가가 되어 글을 쓰고 이 일에 만족하니까 충분히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동화는, 없는 이야기를 마치 있는 것처럼 사랑과 재미와 희망과 꿈과 감동을 섞어서 가슴을 따뜻하게 하고, 읽고 나서는 즐거움과 긴 여운이 남아있어야 좋은 동화라고 생각합니다.

“돈도 못 버는데 무슨 성공?” 이라고 걱정해 주는데 돈도 벌면 더 없이 좋겠지만 그것은 희망사항입니다.부와 명예와 권력을 가져야만 성공한다는 인식은 이제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최근에 알게 된 자주 보는 아주머니의 손금을 봐줬습니다. “손금에 생명선이 너무 짧아요. 병원에 가서 죽다 살아나면 좋아집니다.”, “사실은, 남편과 이혼하고 나서 죽으려고 한 적이 있어요.”, “아, 네.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았겠어요. 이제 2년만 고생하면 앞으로 좋아집니다.”, “정말 이예요? 아들이 공무원 시험 준비하고 있는데 합격할까요?”, ‘그런걸 알면 내가 벼락부자 되었지.’ 속으로 생각했지만 힘들게 살아가는 아주머니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습니다.

“합격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정말 합격 하겠어요?”, “혹시 친정아버지는 살아 계세요?”, “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몇 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는 것도 못 봤고 생각도 하기 싫은 사람이에요.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었거든요.”, “제사나 산소에도 안 가실 정도라면 친아버지가 아니신가 봐요?”, “친아버지가 맞아요. 자식들을 너무 힘들게 해서 없어졌으면 하고 살았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이제 살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보통 아버지는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지요. 좀 의외입니다.”, “아버지도 남편도 나쁜 사람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니 이혼을 잘 한 것 같아요. 다행히 두 아들이 착하고 효자라서 사는 맛이 나요.”

왜 친정아버지가 살아계시는지 물어봤냐하면, 짧은 생명선을 가지고 아직도 살아있는 게 신기해서 조상 복으로 생명이 이어진 게 아닌가 싶어서입니다.

나는 아버지와 남편을 원망하며 가슴 아파하는 그 아주머니에게 응어리를 풀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를 용서해 주는 것이 자신의 앞날에도 좋을듯하여 거짓말을 하기로 했습니다.

“아들이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고 하셨지요? 시험에 합격하려면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뭔데요? 가르쳐주세요.”, “꼭 합격 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한 번 해 보실래요?”,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할게요.”, “아버지 제사가 언제입니까?”, “한 달 남았어요. 왜요? 제사 때 친정에 안 갈 겁니다.”

“아들의 시험을 앞두고 부모로써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정성을 보여 주세요. 시장에 가셔서 제사 장거리를 번듯하게 준비해서 친정에 가세요. 엄마한테 가서 그동안 못 와서 미안하다고 하시고 절대 원망의 말을 해서는 안돼요. 무조건 잘못했다고 말하고 아버지 산소에 가셔서 미운 말 대신, 아버지 살아생전에 잘 못해 드려서 죄송하다고 용서해 달라고 하세요.”, “그렇게는 못해요. 친정에 안 가본 지 오래 되었고, 아버지 산소에는 정말 가기 싫어요. 나는 잘못한 게 없고 모두 아버지 잘못인데요.”, “아들을 위해서 그 정도 못해요? 나 같으면 아들을 위해서라면 그보다 더 힘든 일도 할 겁니다. 남도 아니고 아버지인데 제사 때 가 보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그 일은 잊었습니다.

“물김치 좋아하세요? 한 통 가져왔어요.”, “직접 담은 거예요?”, “친한 언니가 많이 주셨는데, 반을 드리고 싶어서요. 솜씨가 좋아서 맛있어요. 깻잎도 좀 드셔보세요.”, “얻은 것인데 제게 줄게 있나요?”, “많이 주셨어요. 있잖아요, 나 다녀왔어요.”, “어디요?”, “친정에요. 아버지 제사음식 제가 다 준비했어요.”, “아유, 잘 했어요. 엄마가 좋아하시지요?”, “엄마가 너무 좋아하셨어요. 엄마하고 나 하고 붙잡고 많이 울었어요. 시키는 대로 무조건 내가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산소에 가서 우니까 엄마도 따라 우셨어요. 내 평생 그렇게 울어보긴 처음이에요. 가슴에 맺힌 한을 다 푼 것 같아요. 아버지를 용서하고 나니 이제 마음이 편해요. 앞으로 친정에 자주 가기로 했어요. 고마워요. 다음에 또 반찬 갖다 드릴게요.”, “잘 했어요. 무조건 잘 했어요.”

그리고 오늘,“우리 아들이 공기업에 합격했어요. 지금까지 공무원 준비를 했는데 공기업에 합격했으니 더 잘 됐어요.”, “어머나, 잘 됐네요. 축하해요. 조금 늦었지만 이제 행복 시작이네요. 앞으로 좋은 일이 더 많이 생길 거예요.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나는 합격한다고 말해놓고 떨어질까 봐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그 아들이 합격해서 오히려 내가 더 고마웠습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음료수와 빵을 주며 진심으로 축하 해 주었습니다. 용서란 나를 위한 최선의 선물이기도 합니다. 남을 용서하는 건 지극히 용기가 필요하니까요. 대부분 직업을 갖는 이유가 먹고 살기 위해서 가져야한다고 말 합니다. 우리는, 적어도 이 글을 읽는 지성인들은 그렇게 무식하게 말하지 맙시다. 조금 더 고상하고 품위 있게 이렇게 말 합시다.

“행복해 지기 위해서 직업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행복을 찾기 위해 직업을 가지려고 한다면, 노력이라는 시동을 지금 걸어보시지요. 노력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