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詩] 풀
2025-11-23 대경일보
풀들의 환승역은 겨울이다
침묵을 묻고서 무심히 갈아타는 누런 사유의 행방
어디선가 메마른 바람 일어서고
발 저린 기억의 반쪽이 추억 깊이 체온을 찔러 넣고서
허공에 깊이 휘파람을 날린다
언젠가 푸르렀던 이름의 옆자리를 떠올리며
공백의 한끝,
묵정의 안부가 열렸다 닫힌다
이미 지상을 빠져나간 시간은 무효다
사리라도 쥐어진 듯 지난여름 들끓던 울음의 알들은
바람이 빠져나갈 때마다 늑골이 휘고
푸름을 버텨내던 태양은
벌레가 진화하기에 충분했다
이맘쯤의 풀은 갓 구운 허무처럼 파삭하다
바람 깊이 묻어나는 경련이 텅 빈 고요를 흔든다
사유들이 땅 밑으로 내려간 계절의 끝
오래된 역처럼 제 몸 한켠 날것들에 비워준,
지난밤 안개를 불러들였던 것도
풀들의 겨울나기였을까
〈약력〉
충북 청주 출생
2006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집 ‘푸른 상처들의 시간’
‘자작나무에게 묻는다’
‘콩나물은 헤비메탈을 좋아하지 않는다’
‘베짱이로 살기로 했다’
산문집 ‘착한 거짓말이 물어다 준 행복’
안견문학상 대상, 황금찬 문학상 대상, 평택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