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군, 산불피해 치유문학 인생 시집 ‘소를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출간
“불에 탄 숲처럼 어르신들의 마음도 한 순간에 무너졌지만, 다시 새순이 돋고 햇빛이 스며들 듯 사람도 치유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2025-11-24 이동섭 기자
불길이 지나간 자리에서 다시 살아가려는 이들의 마음을 담은 시집 ‘소를 두고 갈 수는 없었다’가 세상에 나왔다. 시집의 제목은 구술 채록 과정에서 한 어르신이 들려준 말에서 따온 것으로, 재난 속에서도 삶을 지켜내려 했던 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의성군이 최근 발간한 이 시집은 문학상주작가지원사업과 산불피해 치유문학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된 구술 기록 작업의 결실이다. 2023년 의성문학상주 작가였던 김수상 작가의 제안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로 올해 상주작가인 사윤수씨도 동참했다. 이들은 지난 여름부터 단촌면 구계2리와 신평면 용봉리를 수차례 찾아 어르신들의 인생과 산불의 기억을 직접 듣고 받아 적는 과정으로 이뤄졌다.
김수상 작가는 “모든 시는 인생시입니다. 시는 사람이 쓰는 것 같지만, 결국 인생이 불러주는 것을 받아쓸 뿐입니다”며 무더위와 폭우가 이어지던 7월부터 코발트빛 하늘이 펼쳐지는 10월까지 마을을 오가며 어르신들의 삶을 들었다고 회상했다. 구계리는 산불 피해가 극심해 마을 대부분의 집이 잿더미가 되었고, 용봉리는 산과 작물 피해가 컸다. 그러나 작가에게 더 깊은 울림을 준 것은 “더 큰 고비들을 이미 견디고 살아온 분들이라, 산불 앞에서도 또 툭툭 털고 일어서는 모습”이었다고 했다.
김 작가는 어르신들의 몸을 “기억의 서랍, 이곳 말로는 ‘빼다지’”라고 표현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그 서랍에서 꺼내놓는 삶의 이야기들이 많아졌다고 적었다. 그는 “유모차에 의지해 여전히 산 너머 밭으로 가던 한 어르신의 뒷모습에서, 인생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모습 자체가 詩였다”고 강조했다.
이번 시집에는 이렇게 채록된 이야기들이 총 17편의 시로 엮였다. 산불 직후 현장의 증언부터 잿더미 속에서도 다시 희망을 일구는 주민들의 삶까지, 기억의 조각들이 시의 언어로 표현됐다.
사윤수 작가역시 “불에 탄 숲처럼 마음도 한순간에 무너졌지만, 새순이 돋듯 사람이 다시 치유될 수 있음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주수 의성군수는 “재난의 상처를 문학적 언어로 승화한 귀중한 기록”이라며 “산불 피해 지역뿐 아니라 모든 공동체에 희망과 극복의 메시지를 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의성군은 오는 12월 20일 오후 2시, 의성청소년문화의집에서 ‘인생시 낭독회’와 ‘친필 시화 전시회’를 열어 주민들의 목소리가 담긴 작품들을 지역민과 함께 나눌 예정이다.